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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30. 2021

터널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마음 깊은 곳 나의 이야기


터널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어느 날 문득 오래전 일기장을 펼쳤는데 '엄마가 죽을만큼 밉다',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한 구절을 발견하고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고 드러나면 너무나 두려운 자기 안의 엄청난 분노심을 가졌던 '나'를 발견합니다. 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무서워할까요? 자식은 부모가 어떤 사람이든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자신이 괴롭습니다. (중략)

그 마음은 굉장히 처절한 고통이에요. 그 마음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가 싫을 수 있습니다. 분노도 느낄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 감정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그런 부모 밑에서 미움이나 분노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갖는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 부모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많은 순간 자신을 채찍질해 왔을 겁니다. p26

- 오은영 <화해> 중


요즘 어릴 적 나를 만날 때면 몇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홀가분함-분노-원망-부정-죄책감. 걸핏하면 나를 집어삼키는  감정들 때문에 너무나 괴롭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읽은 후 당장은 무덤덤했다. '나'에 대해 알게 되어서, '왜' 그랬는알게 되어서 되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셌다.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해 보이는 바다 중간중간 집채만 한 파도가 일렁이듯. '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인가', '누구보다 열심히 산 모친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부정과 죄책감의 파도 속으로 마구 휩쓸려 다니며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의 시작인 글쓰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두렵고 원망스러운 어린 시절 나와의 만남을 중단할 수가 없다. 어두컴컴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긴 터널. 그 안에서 뱅뱅 돌기만 했던 내가 이제야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빛을 향해, 진짜 '나'를 향해 말이다. 터널 안에는 여러 명의 내가 있다. 사랑받았던 나, 미움받았던 나, 행복했던 나, 죽고 싶었던 나... 지금 나는 마음 깊이 한쪽 구석에 감춰져 있던,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감정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1.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쓴다.

2. 제3자(남편)과 공유하며 객관화한다.

3. 글을 쓰며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4. 변화하고 치유한다.




내 얇은 그릇을 두껍게 튼튼하게!


아이는 굉장히 여렸어요. 잘 울고 상처도 잘 받았죠. 그 아이와 며칠 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네가 아주 어렸을 때는 감정이 와서 탁 닿으면 그릇에 금이 갔어. 그래서 너희 부모님은 굉장히 오랫동안 그릇에 금이 가지 않도록 너를 애써 키웠단다. 요새는 금은 안가. 그런데 아직도 그릇이 좀 얇아. 그릇이 얇으면 울림이 커. 그래서 감정이 탁 닿으면 공명이 생기지. 그 울림이 네 마음에 코옥 하고 아픔으로 오는거야. 그 울림이 너한테 영향을 줘. 너를 마구 흔들어서 너의 근간을 흔들리게도 해. 그럴 때는 울리는 그릇을 탁 잡아. 네가 그럴 수 있어야 해. 장기적으로는 그릇을 좀 두껍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 좀 든든한 사람이 되지. 섬세한 것은 좋은 거야. 하지만 울림은 적어야 돼. 조금만 울리다가 탁 잡고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라고 얼른 생각해.

마음에 뭔가 탁 부딪히면 아파지기 전에 그릇을 꽉 잡으세요. 그 울림이 너무 오래가서 나의 뿌리와 둥지까지 흔들게 두지 마세요. p295

오은영 <화해> 중


올해 초 삼성전자 주식을 조금 사놓았다. 79,500원에 산 주식은 82,000원까지 올랐다가 곤두박질치고 내려가 올라올 줄을 모른다. 기다리면 오르겠지 하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확인하곤 한다.


"삼성전자 많이 떨어졌더라.

 지금 사. 가격 낮춰놔야지."

(이 글자 크기처럼 엄마의 한 마디는 이상하리만큼 내게 크게 다가온다.) 엄마는 내가 주식 산 걸 모른다. 그런데 어제 전화로 대뜸 가격을 낮춰 놓으라 하신다.


"네, 알겠어요."

대답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낮춰놓으라고? 주식 산 걸 어떻게 아셨지?'


머릿속으로 추적해 나가 보니 남편밖에 없다. 그렇다, 범인은 남의 편, 남편이다. 요즘 엄마의 낙은 청약주 모으는 것이다. 재테크에 관심 많은 장모님 덕에 남편도 최근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한 주 한 주 청약주식을 모으는 중이다. "어;;: 어.. 내가 말씀드린 것 같아." 남편이 이실직고한다. 며칠 전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며 운전석에 앉은 남편과 보조석에 앉은 친정엄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 주식 얘기까지 했나 보다. 내 얇디얇은 마음 그릇이 딩~하고 울린다. 나는 또 사정없이 흔들린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두세요!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중입니다.


'내 의사를 알려야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앞으로 "주식 사라" 이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사고팔겠습니다.
손해 보아도 제가 책임질 문제이지 어머니 탓이 아닙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 벌렁거렸다.

(지금 또다시 심장이 마구 뛴다.)


난 왜 이리 긴장하는가. 내 의사를 표현한 것뿐인데. 나는 왜 엄마가 받을 상처와 불쾌함에 이리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인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게 예의 아닌가? 그랬다가는 서로 얼굴만 붉히며 끝내 휘발되어 버릴 대화임을 알기에 나에겐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에겐 답이 없다. 아마도 밤잠을 못 이루셨을 것이다. 몇 년 전 예고 없이 아무 때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우리 집에 들르는 엄마에게 불편한 심정을 내보였을 때처럼.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너가 부르기 전에 너네 집에 다시는 들르나 봐라!" 며칠 내게 쏟아부으셨을 때처럼.

그때의 나는 엄마에게 퉁명스레 말했지만, 이번의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담담히 나의 마음을 전했다. "괜찮아, 잘했어."소리 내어 말하고, 차갑게 떨리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머니께 연락 왔어?"

퇴근한 남편이 물었다.


"아니. 하지만 괜찮아. 내 생각을 전했다는 게 중요해."

나에게 말한 건지, 그에게 답한 건지 모르겠다.


"잘했어."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이 침잠하던 나를 위로 끌어 올려주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또다시 물속 깊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 가라앉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가라앉았다 다시 올라오고  가라앉았다 또다시 올라오며, 마침내 물 밖으로 나올 것이다.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다. 앞으로의 내가 조금 더 편안한 모습이길, 비로소 '나'다운 모습이길 바라며. 깊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보며 '내가 이랬었구나' 했던 것처럼, 오늘의 이 글을 보며 '내가 이랬었구나' 하는 그 날이 오길.




Photo by Glen Carrie on Unslash

Photo by Jeremy Bishop on Uns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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