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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Mar 29. 2022

세상 하나뿐인 육회 케이크♡

생일이 기다려진다.


육회, 산낙지, 연어회.

우리 집 아들들의 최애 메뉴다. 매일매일 먹고 싶지만 그리 할 수 없는 가깝고도 먼 당신. 신선도가 중요하다 보니 가격이 저렴하지 않고, 그리하여 시시때때로 만만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소주 한 잔 걸치기 딱 좋네 싶기도 하지만,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기도 한다. 나도 서른 살이 넘어 즐기게 된 이 음식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산낙지랑 육회가 왜 그렇게 좋아?" 아이들에게 물으니

"식감이 좋아서요." 란다. 이 녀석들, 요리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봤다.






지난 금요일은 남편의 생일이었다.

친정엄마가 생일 선물로 꿀을 예약해 놓으셨단다. 토종벌꿀은 수급이 쉽지 않아 몇 년에 한 번 겨우 들어오는데, 우리 부부 각자 하나씩 먹으라며 두 병이나 시키셨다. 오후 2시, 예약해 놓은 꿀을 받으러 친정 근처 생협에 들렀다. (친정과 우리 집은 차로 15분 거리다.) 둘째 하교 시간이 임박해 꿀 상자를 받아 들고 급히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작은 모퉁이 가게 유리창에 붙은 광고지가 내 시선을 붙잡는다. 육회가 한 팩에 11,000원?! 저렴한 가격에 고개를 갸웃하며 가던 길을 가고 싶지만 나의 발은 이미 우측 정육점으로 향한다. 입은 "육회 한 팩 주세요" 라 말하고 있으며, 손은 휴대폰 케이스 뒤에서 신용카드를 꺼내고 있다. 그래, 평소에 사 먹던 음식점 육회보다 나을 수도 있어. 속는 셈 치고 한 번 사 먹지, 뭐.


다섯 시간 후 나는 낮에 갔던 정육점으로 다시 차를 몰고 있었다. 오후 내내 날이 흐리더니 해 질 무렵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한 빗 속을 뚫고 가깝지도 않은 정육점을 하루에 두 번 걸음 하다니. 속는 셈 치고 맛이나 보자 했던 육회를 세 팩이나 사게 된 것이다.






편은 안 먹어도 된다며 케이크 사길 극구 만류했다. 남편과 나의 생일은 한 달 터울이다. 한 달 전 내 생일엔 내가 직접 고른 투썸 케이크를,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엔 행사 중인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먹었다. 케이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음 주엔 건강검진도 있는데 몸 관리해야 한다며 남편은 연거푸 "케이크는 사지 말자" 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초는 꺼야 하지 않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 둘째의 말에 띵! 하고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엄마, 육회 더 먹고 싶어요." 

"다 먹었잖아. 배불리 먹는 음식은 아니야."

"힝, 그래도 더 먹고 싶은데 ㅜㅜ"

"육회는 다음에 또 먹고 케이크 사러 갔다 오자.

 초는 불어야지"

"육회 사서 초 꽂으면 되잖아요."


아홉 시쯤 문을 닫는다던 정육점은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일찍 마감하는 분위기였다. "육회 두 팩 주세요." 젖은 우산을 털며 말하자 "아까 전화하신 분이세요?" 사장님이 묻는다. 시청 근처 사는데 너무 맛있어서 또 사러 왔지 뭐예요. 호호호! 육회 생각에 신이 나서 오지랖을 떨 뻔했다. 계산 후 근처 빵집으로 초를 사러 갔다. 숫자 모양으로 된 초를 고르는데 나와 동갑인 남편의 나이가 순간 헷갈린다. 마흔다섯이더라 여섯이더라... 2022에서 1977을 빼고 1을 더하면 46. 그래, 마흔여섯이 맞네. 초를 고르고, 예정에 없던 미니미니한 딸기 케이크도 하나 샀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큰 접시에 케이크를 얹고 육회를 빙 돌려 담았다. 케이크 위에 초까지 얹으니 그럴듯한 생일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생일이라고 꼭 하얗고 영롱한 생크림 케이크만 먹으란 법 있나? 돈다발이 들어있는 칠순 케이크, 초코파이로 만든 3단 케이크, 오싹하게 꾸며진 할로윈 케이크, 명품가방 모양 이벤트 케이크 등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다. 그래도 육회로 만든 케이크라니! 참으로 신박하다. (글을 쓰며 '육회 케이크'를 검색해보니 우리가 처음은 아니다. 다만 미니멀한 딸기 케이크는 신의 한 수였다. 시뻘겋기만 한 보통의 육회 케이크보다 훨씬 보기 좋다.) 


아들들의 생일은 일주일 터울이다. 아이들 생일을 하루에 몰아서 할 수는 없으니 생일 당일 가족끼리 하는 생일파티부터 양가 식구들과 함께 하는 파티까지 합하면 아이들 생일 달에는 적어도 3~4판의 케이크를 먹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리 하지 않아도 되겠다. 육회 22,000원에 미니 케이크 7,500원. 총 3만 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이렇게 맛있고 속 편한 케이크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연어회 좋아하는 첫째 생일에는 연어회 케이크를,

산낙지 좋아하는 둘째 생일에는 산낙지 케이크를 준비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6월 아이들의 생일이 기다려진다. :)


세상 하나뿐인 육회 케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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