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게 다이어리가 필요한 이유
학창 시절,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이어리를 꺼내는 것이었다. 야심 차게 계획표를 짜고, 실행한 항목에 형광펜으로 체크했다. 형광펜 표시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회사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내가 처리해야 할 업무를 간단히 적는 것이었다.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마무리하고 나면, 마음 가볍게 퇴근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학습 계획을 세우고, 직장인들은 업무 일지를 쓴다. 그런데 전업주부는?
내 경험상, 전업주부의 하루는 그 누구보다 바쁘게 돌아간다. 하지만 투명망토에 덮여있는 건지 신기하게도 티가 나지 않는다. 살림을 꾸준히 할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멈추는 순간 그제야 그 티라는 것이 확 드러난다. 왜 그럴까? 바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림, 육아, 가족을 챙기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부나 업무처럼 문서화되지 않기에 사소해 보이기 쉽다.
주부로서 내가 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집안일, 각종 일정 조율, 아이 유치원 선생님과의 통화까지.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된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한 일을 적어보면 깨닫게 된다. 내 하루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주부의 하루는 워낙 다양하다. 일의 종류도 많고, 긴급한 일이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들이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된 우리 집 거실처럼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종이에 '해야 할 일'을 쭉 써보는 것이다.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보인다.
우선순위가 정리되면, 그제야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나를 위한 시간도 만들 수 있다.
주부의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면, 가족을 위한 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끝난 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나 오늘 뭐 했지?
- 근데 왜 이렇게 바빴고, 난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 허무함은 야식, 넷플릭스, SNS 무한 스크롤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다이어리를 쓰면서 하루를 기록하면, 그 안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운동도 할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고,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할 수 있다.
다이어리 속에 작은 한 칸이라도 '나'를 위한 공간을 남겨두자. 주부이기 전에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가끔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감정을 다이어리에 짧게 적는다.
- 오늘 딸이 밥을 너무 많이 남겨서 속상하다.
- 딸이 나에게 엄마는 마녀라고 했다.
솔직히 쓰는 순간에는 억울함과 분노를 담아서 쓴다.
그런데 정말 마법처럼, '7살짜리가 하는 말인데, 내가 그렇게 화낼 일이었나' 싶을 때가 많다. 글로 써보면 객관적인 시선이 생긴다.
또 나는 하루에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적는다.
- 남편이 드라이브 스루로 스타벅스 커피를 사줬다.
- 아이랑 카드게임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너무 사소하고, 맨날 똑같은 내용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연말에 다이어리를 넘겨보면 재미있다. 아 내가 그래도 올해도 잘 살았네, 뿌듯한 감정이 올라온다.
힘든 감정을 기록하면 작아지고,
감사와 기쁨을 기록하면 행복이 커진다.
나는 7년째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장 현실적인 다이어리 쓰기 방법을 찾았다. 주부들에게 '거창하지 않게' 다이어리를 시작하는 법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소개하는 방법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이어리 쓰는 법을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
다이어리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도구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처음부터 두툼한 다이어리를 사지말자. 앙증맞고 예쁜 얇은 노트로 시작하자. 금방 한 권을 채우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성취감이 지속적으로 나의 하루를 기록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자기 전이나 새벽에 잠시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을 갖는다.
- 오늘 해야 할 일
여기서 포인트는 너무 빡빡하지 않게, 그리고 오늘 하루 가장 중요한 '오늘의 원씽(One Thing)'을 정하는 것이다.
- 오늘 감정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일을 쓰고 힘든 일이 있었다면 그 또한 짧게 기록한다.
예를 들어, 어제 나는
- 증권사 방문, 집 청소, 빨래 개기, 장보기, 독서
이렇게 적었지만, 가장 중요한 "원씽"은 '저녁에 집에 오시는 손님에게 식사대접을 잘하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병원에 다녀오느라 증권사도 못 갔고, 책도 한 줄 못 읽었지만 어제 나의 하루는 성공적이었다. 왜냐고? 집에 오셨던 손님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가셨으니까.
난 어제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 부분을 완료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잘 살았다'라고 떳떳하게 기록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다이어리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이다.
가족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 그 누구보다 의미 있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는 너무 쉽게 흘러가 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 매일 반복되는 살림, 끝없는 일정들. 정작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다이어리를 쓰면서 깨달았다. 주부로서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정을 정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만약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주부 생활 속에서 새로운 도전 할 생각도, 실행할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다이어리는 내 성장의 기록이자, 내 친구다.
주부들이여, 당신의 삶을 기록하세요.
당신의 하루는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이어리 쓰기에 대한 더 깊은 인사이트와 방법이 궁금하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음 글에서 더 구체적인 다이어리 활용법을 나눠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