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피아노 교육에 진심인 엄마의 이유
6살, 그러니까 만 4세 반.
딸의 손을 잡고 피아노학원에 갔다. 일부 피아노 학원에서는 한글을 떼고 와야 한다고 하지만, 다행히 우리 동네의 피아노학원 원장님은 "아이가 어느 정도 앉아서 집중할 정도만 되면 괜찮아요."라고 하셨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유난히 바글바글했던 피아노 학원과의 첫 만남.
아이는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는 것을 유난히 어색해하는 편이라 살짝 긴장했지만, 처음 만난 피아노에 호기심을 보였다. 선생님이 "피아노를 만져봐도 괜찮아."라고 하시자,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하얀 건반을 꾹 눌러본다. 띵. 자신이 건반을 누르고, 그 소리에 깜짝 놀란다.
그렇게 아이의 피아노 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음은 주 5회를 보내고 싶었지만, 운동하는 날도 있어 3회 다니기로 했다.
이쯤에서 "어린아이에게 피아노를 왜 그렇게 일찍 배우게 하나요?", "혹시 음악 전공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전혀 아니다.
물론 나도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고, 잠시 음악 전공을 하고 꿈꿨던 적은 있다. 하지만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드는데 비해 돈이 되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과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은행원으로 10년을 보냈다. 아무튼 예술과는 거리가 먼 엄마다.
그런데 왜 음악 문외한 엄마가 딸의 피아노 조기교육에 마음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참고로, 딸을 훌륭한 음악가로 키우려는 욕망이 있어서는 전혀 아니니 편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피아노학원에서 6살인 우리 딸이 가장 어리다. 사실 7살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피아노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존재 자체가 귀요미'다 보니 선생님은 물론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사실 딸은 동생만 있어서 그런지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함께 잘 놀지만, 언니, 오빠들이 같이 놀자고 하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니, 오빠들과 즐거운 기억이 하나씩 쌓이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지속적이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피아노 학원이라고 생각했다.
피아노 학원에 갈 때마다 언니, 오빠들이 귀엽다고 해주고, 사탕과 과자도 나눠 먹는다. 그러다 보니 딸은 어느새 언니, 오빠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학원이 끝나면 내가 학원까지 데리러 가지만, 초등학생 언니들이 딸과 함께 기다렸다가 놀이터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우리 동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제 딸은 9살 언니들이 정말 좋단다.
이쯤 되면 피아노 학원의 역할은 이미 다했다. 성공이다.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몇 달이 지나 양손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엄마, 나 피아노 학원 이제 안 갈래요."
양손으로 치는 것이 조금은 버거웠던 모양이다.
나는 딸에게 물었다.
"왜 피아노 학원 안 가고 싶은 거야?"
"너무 어려워요. 그리고 나는 언니들보다 못해요."
"근데 너 그거 알아? 원래 피아노는 어려운 거야. 너는 그 어려운걸 지금까지 잘해왔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유치원 친구 중에 피아노 칠 줄 아는 친구 있어?"
"아니, 없어요."
"거 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학원에 가서 배우는 거야. 언니들은 너보다 훨씬 연습을 오랫동안 해서 잘하는 거고. 엄마가 보기엔 6살 중에서 네가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것 같은데? 생각해 봐."
딸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내 친구는 아무도 피아노를 못 쳐! 나만 쳐!"
나닌 이 대화를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전하며,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오랫동안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이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칭찬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이후로 딸은 한 번도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오늘은 좀 쉴까?"라고 물어도 딸은 꼭 가겠다고 한다. 아마도 피아노가 딸에게 '잘하는 무언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딸에게는 즐거움이자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난 잘한다."라는 확신이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딸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아이가 자신의 작은 실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했다.
눈으로 악보를 읽으면서 양손으로 건반을 치고, 귀도 소리에 집중한다. 때로는 발로 페달을 밟기도 한다. 이처럼 피아노 연주는 시각, 청각, 촉각을 동시에 사용해 복합적인 감각을 발달시킨다.
뿐만 아니라, 악보를 보며 손가락을 조화롭게 움직이는 과정은 손과 뇌의 협응력을 키우고, 집중력과 순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악보를 읽으며 음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 음을 건반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사고력과 창의력도 길러준다.
피아노를 꾸준히 배우면 기억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새로운 곡을 연습하며 패턴과 흐름을 기억해야 하고, 반복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암기력이 좋아진다. 이런 경험은 아이가 다른 학습활동에서도 끈기와 인내심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된다.
굳이 사고력 수학이나 학습지를 하는 것보다 피아노 연주가 더 다채롭고 재미있으면서도 훨씬 큰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는데,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며 학원을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아노 진도는 내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아이 역시 피아노를 뛰어나게 잘 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아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성장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무언가에 꾸준히 집중해 기술을 연습하고 발전시키는 경험을 쌓는다는 것 자체가 값진 일이 아닐까. 피아노를 배우는 시간은 단순히 곡을 완성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가 인내심을 기르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끈기를 발휘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그 경험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때도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어떤 일은 시간이 걸리며, 때로는 지루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서 조금씩 연습하며 한 곡을 완성해 가는 과정처럼, 삶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마음가짐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피아노를 통해 배운 끈기와 도전의 경험은 삶의 여러 순간에서 아이를 빛나게 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