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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금 Dec 20. 2024

책육아, 안 해도 괜찮을까요?

책을 넘어서는,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배움의 길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책육아'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진다. SNS를 열어보면 거실을 인스타 감성이 물씬 풍기는 북카페처럼 멋들어지게 꾸며놓고, 아기자기한 그림체의 전집으로 꽉꽉 채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엄마들은 구연동화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맛깔나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인형극이나 보드게임, 과학실험까지 곁들인 독후활동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이 엄마들, 도대체 못하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에잇 이걸 집에서 어떻게 해. 분명히 연출된 걸 거야.' 혼자 심통을 부리며 피드를 퍽퍽 넘긴다. 내 마음을 더 후벼 파는 건 그 집 아이들의 표정이다.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와의 독서활동을 즐기는 그 표정. 그저 즐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영재라고까지 한다. 쳇. 



나도 책을 좋아하는 엄마라 책육아를 하고 있긴 하다. 거실에 TV가 없으며, 매일 밤 잠자리 독서를 하고, 매주 도서관에 방문하여 책을 빌려보는 정도다. 책육아라고 하기 좀 민망하기도 하다. 그런데 SNS 속 '넘사벽 책육아 맘'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괜히 심통이 났던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서, 나도 좋아하지. 그런데, 독서를 안 하면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왜 그렇게 다들 책책 거리며 집착하는 걸까?'






10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양한 분야의 대표님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품위와 위트가 동시에 묻어나는 그들만의 고유한 매력이 느껴졌다. 


어느 날, 한 대표님께 이렇게 물었다.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데,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죠?" 그런데 예상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에이 나는 책 잘 안 읽어. 그냥 밥 먹고 일하면서 배운 거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실패 몇 번 해보면 책 보다 더 확실하게 배울 수 있어. 하하하." 


자수성가한 그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수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갔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단단한 원칙을 세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기 계발서를 보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들 독서를 한다는데, 실제로 내가 만났던 성공하신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독서를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이 아닌 다른 무엇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들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자신만의 가치관을 담아 정성스럽게 행동하는 그들의 태도가 평범한 대중과 한 끗 다른 차이를 만들어냈고, 결국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내 바로 옆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남편이다. 


어느 날 내가 진로로 고민하던 중, 책에서 '잘하는 일 보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라는 내용을 읽고 감명받아 남편에게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오히려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걸 책을 읽고 깨달았어? 나는 이 일 해보고, 저 일 하면서 몸으로 깨달았는데."


남편은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성공과 실패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세상과 부딪히며 얻은 경험 속에서 인생의 다양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기에 굳이 언어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인간의 배움이란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아닐까. 결국, 독서도 배움을 위한 여러 가지 경험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책육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책은 결국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경험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책 속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단단히 자리 잡을 것이다. 



나는 따뜻한 부모의 품 안에서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렇기에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와 함께 시장에서 어떤 사과가 맛있을지 골라보고, 사장님에게 웃으며 "조금만 깎아주세요."라고 부탁해보기도 하고, 숲에서 작은 나뭇잎을 만지며 자연을 느끼게 하고, 여행지에서 낯선 풍경을 보며 세상과 부딪치게 하고 싶다. 



책육아는 여전히 훌륭한 양육방식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책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책은 도구일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만나고 부딪치며 성장하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나는 따뜻한 부모로 묵묵하게 아이들의 곁을 지킬 것이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배움이다.

- 버진그룹 창립자, 리처드 브랜슨
(Richard Br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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