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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금 Dec 06. 2024

산타할아버지는 몇 살까지 우리 집에 오실까?

우리가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줘야 하는 까닭

1.

5살. 어린이집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했다. 어떤 선물을 주실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대망의 그날. 하얀 구름을 두른 듯한 수염, 눈사람을 닮은 둥글둥글한 몸매. 루돌프는 없었지만, 선물상자로 가득 차 불룩하게 부푼 빨간 자루를 둘러멘 그의 모습은 의심할 여지없는 완벽한 산타였다.



그는 빨간 자루에서 선물을 하나씩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주셨다. 나는 숨죽이며 그의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 저건!' 낯익은 포장지로 감싼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포장지 귀퉁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이걸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이미 내 손은 선물을 꼭 쥐고 있었다. 이건 분명 공책이다. 포장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느껴진 그 딱딱한 촉감이,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개미 똥구멍만 한 비밀도 만들기 어려웠던 단칸방. 엄마는 방 한쪽 구석에 등을 돌리고 앉아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TV를 보던 내 시선은 어느새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의 팔뚝과 옆구리 사이로 반짝이는 빨간 포장지와 그 속에 싸인 공책이 살짝 비쳤다.



그날,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았다.



2.

작년 12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에서 크리스마스이브날, '산타 가정 방문 행사'를 연다고 했다. 인력과 시간의 제한이 있기에 각 라인당 5 가구만 신청이 가능하단다. 영유아 가정이 많은 우리 아파트에서 선착순 5 가구라니. 경쟁이 치열하겠는걸.



행사 신청일 아침. 남편을 일찌감치 관리사무소로 보냈다. 다행히 약간의 기다림 끝에 성공! 드디어 우리 집에도 산타가 찾아오게 되었다.



그날, 아이들보다 내가 더 설레었다. 굴뚝이 아닌,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인종을 누르며 들어온 젠틀한 산타. 아이들은 그가 건네어준 선물을 들고 기뻐하며 사진도 찍고 악수도 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크리스마스이브는 더없이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산타가 떠난 뒤, 5살이던 딸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엄마, 근데 저 아저씨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니야. 내가 봤어. 수염 옆에 고무줄이 있었어."


"그래? 참 눈썰미가 좋네. 하하하."(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언제나 아이들은 어른들은 가늠할 수 없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산타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간다.




3.

6살. 딸은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핀란드의 산타마을에 살고 계시며, 너무 바쁘고 멀리 있어서 직접 오시기 힘드실 거라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 행사나 우리 집에 오는 산타는 진짜 산타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대신 온, 이른바 하청업무를 맡은 한국인 산타 아저씨란다. 어설픈 아저씨의 산타 복장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뿌듯해하며, 자기가 얼마나 눈썰미가 좋은지 뽐내는 이 귀여운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타 선물만큼은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직접 보내주신다고 믿고 있다. 


어젯밤에도 6살, 4살 두 딸은 베란다 밖에 비치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산타 할아버지, 마이 멜로디 핑크색 옷 선물해 주세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4.

남편은 유아체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과 오랫동안 함께해 왔다. 그래서 물었다.



"아이들이 몇 살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어?"



남편은 보통은 6~7살만 되면 대부분 진실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 유치원에서 산타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7살 남자아이 하나가 다가와, 장난기로 가득 찬 눈알을 굴리며 이렇게 묻더란다.



"가짜죠?"






산타할아버지는 몇 살까지 우리 집에 오실까. 나는 이 아이들의 동심을 몇 살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내가 애써 동심을 지켜주려 해도, 아이들은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난 그날이 올 때까지 치열하게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



산타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기대하며 보내는 설레는 시간들, 연말의 따뜻한 분위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달콤한 케이크를 함께 먹는 순간들. 이런 감각들은 단순한 기억 이상의 힘을 가진다. 꼭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지 않아도 괜찮다. 그 따듯한 감각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언젠가 만나게 될 차가운 현실에서도 그들을 지켜주는 뿌리가 될 테니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팍팍한 사회생활과 매섭게도 추운 12월이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날에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한 감각이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세상의 찬바람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힘이 되어 주길.



아무리 찬바람이 사이로 바늘처럼 파고들어도, 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둘러매며 씨익 웃을 줄 아는 사람.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으로 자라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세상에 따뜻함을 전할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동심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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