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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금 Nov 29. 2024

왜 놀이터에선 몽클레어를 입어야 제맛일까?

엄마들이 몽클레어 패딩을 사랑하는 이유

겨울의 놀이터는 춥지 않다. 계절불문, 아이들은 작은 새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그려나간다. 넘치는 에너지를 끌어안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고, 칼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타는 모습은 이 작은 새들의 쉼 없는 활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 꼬맹이가 제멋대로 그물타워로 내달린다. 어느새 작은 고사리손으로 그물을 움켜쥔 채, 한발 한발 올라가기 시작한다. 꼬맹이를 지켜보던 엄마는 신속하고 조용하게 아이 곁으로 다가가 든든한 보디가드가 된다. 꼬맹이는 엄마가 뒤에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물을 오르며 발길질을 휙휙 해댄다. 



보디가드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괜찮아~"하고 부드럽게 대답한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단단하게 아이를 받쳐준다. 아이는 기어이 자신이 올라갈 있을 만큼의 높이까지 오르고 나서야 만족한 듯 그물에서 내려온다. 



아이의 발이 땅에 닿으면 보디가드도 잠시 휴식. 그제야 보디가드는 무심한 손길로 가슴에 뭍은 흙먼지를 털어낸다. 엇 팔에도 묻었네. 팔도 몇 번 툭툭 털어낸다. 



검은색 패딩 위로 자잘하게 도드라져 보이던 흙먼지가 서서히 사라진다. 먼지를 털어내는 보디가드의 팔뚝에 눈에 익은 로고가 반짝인다. 몽클레어다.



그 짧은 순간, 놀이터의 한 장면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따뜻하게 빛난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놀이터에 몽클레어 패딩을 입은 엄마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있다. 몇 년 전에는 '강남맘 라이딩룩'이라고 불리더니, 어느새 '신도시맘 룩', 이제는 '국민맘룩'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놀이터뿐만 아니라 마트, 학교 앞, 심지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몽클레어 패딩. 한 벌의 가격이 직장인 월급에 맞먹을 정도로 비싼 이 패딩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예쁘고 가볍고, 기능성 좋은 데다 가격까지 합리적인 패딩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엄마들은 몽클레어 패딩을 그렇게도 사랑할까?



나도 별거 없는, 그저 평범한 엄마다. 다들 입으니 나도 괜히 궁금해졌고, 괜히 예뻐 보였고, 괜히 한 번쯤 입어보고 싶었다. '궁금하면 해봐야지.'라는 게 호기심 많은 나의 지론. 



많은 고민과 망설임 끝에 결국 하나를 장만해 직접 입어 보았다. 그렇게 이른바 '국민맘룩'을 체험하며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

엄마의 겨울 패션에 대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준다. 


아이들이 남긴 아침밥을 치우고, 간밤에 도둑맞은 것 같은 거실과 방을 청소하고,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다 시계를 본다. 앗 벌써 하원할 시간이다. 


나는 집에서 입던 편안한 옷에서 바지만 후다닥 갈아입고, 패딩을 쓱 걸친 채 킥보드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간다. 한 겨울의 추위를 품위있게 맞이하는 엄마의 놀이터룩 완성. 


누군가는 "교복 아니냐"며 놀릴지도 모르지만, 이 귀차니즘 엄마에게는 곰탕 한솥 끓여놓은 것만큼이나 든든한 게 바로 몽클레어 패딩이다. 



하나


자기 존중을 위한 실용적인 선물이다. 


"여보, 나 올해도 고생 많이 했으니까 나를 위한 선물 하나 장만할래"라고 밑밥을 깔며 명품가방을 사기 위한 작업을 시도하는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워킹맘이 아니고서야,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핸드백을 들고 다닐 일이 많지 않다. 


그런 엄마들에게 겨울 내내 가볍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면서 약간의 과시욕도 채울 수 있는 몽클레어 패딩은 실용적이고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니 명품가방 대신 자신을 위한 선물로 몽클레어 패딩을 장만하는 건 제법 현명한 결정이 될 수 있다. 



하나


단 하나의 명품 패딩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의 삶에 꽤나 잘 어울린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쉽게 피로를 느끼는 나를 발견한 이후, 집안의 모든 살림을 간소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렇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옷 역시 값싼 것을 여러 벌 사서 금세 유행이 지나 후줄근해지는 것보다는, 비싸더라도 질 좋은 옷 한 벌을 오래 입는 것이 낫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았다. 


드레스룸에는 오랫동안 나의 선택을 받지 못해 세상 구경도 못해본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쾌쾌 묵은 먼지와 곰팡이를 머금고 있는 옷들이 가득했다. 나는 일상의 무게를 덜어낸 여행가방을 싸듯이, 과감하게 버리고 나눴다. 덕분에 지금은 30대 여성치고는 꽤 여유로운 드레스룸을 유지하고 있다.


그 속에서 검정 몽클레어 패딩은 실용적이면서도 간소함을 지향하는 나의 드레스룸에 꼭 맞는 선택이었다.


 

하나

적당한 사회적 체면을 적당히 유지하기에 괜찮은 선택이다


무심하게 몽클레어 패딩을 걸치고 놀이터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이들 열심히 키우면서 자기 멋도 놓치지 않으려는 엄마구나.', '남편 벌이가 나쁘진 않은가 보네. 와이프에게 저런 선물도 해주는 거 보니.' 혹은 '일한다고 들었는데, 능력이 있는 엄마인가 보네.'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이런 느낌의 인상을 남기는데 몽클레어 패딩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내가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다니는 엄마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초등학교 시절 팔에 차기만 해도 나의 목을 빳빳하게 세워주던 반장 완장처럼, 몽클레어 패딩은 나를 조금 더 당당하게 만들어준다. 유치하지만, 그렇게 되는 걸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나를 남과 비교하며 과시하기 좋아하는 속물적인 아줌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부정하지 않는다. 나도 별수 없는 동네 아줌마니까. 하지만 몽클레어 패딩을 바라보고, 입어보고 다니며 느낀 솔직한 내 생각은 이랬다. 


어쩌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많기 때문에 몽클레어 패딩이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 몽클레어 패딩이 엄마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따뜻하고 실용적 이어서만은 아니다. 

그것이 주는 소소한 자존감과 자기 존중의 감각이 엄마들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꼭 몽클레어 패딩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겐 명품가방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자신을 위한 잠깐의 커피 한 잔일 수도 있다. 



혹여 스스로 자기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무엇이든 치열하게 시도하며 자신만의 자기 존중 방식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중요한 건 아이들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몽클레어이든 뭐든, 그것이 엄마로서의 삶에 작은 행복과 자부심을 더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You cannot love anyone else
unless you love yourself first.)

-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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