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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금 10시간전

똥은 언제까지 닦아줘야 할까?

아이 스스로 똥 닦는 법과 육아의 종착점에 대한 이야기

"그래, 이 정도면 이제 손 많이 갈 나이는 지났지." 싶다고 여겨지는 기준은 뭘까. 


영유아 딸 둘을 키우고 있는 나로선, 단연코 '똥을 싸고 스스로 닦을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싶다.


6살인 첫째는 아랫배에 묵직한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똥구멍을 손으로 부여잡고 토끼처럼 투 스텝을 타닥타닥 밟아대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누가 봐도 '지금이 그때'라는 신호다. 그래도 문은 꼭 닫는다. 방정맞은 걸음걸이의 그녀에게도 그 순간만큼은 집중이 필요한가 보다.


몇 분 후 그녀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면, 하와이 대저택에 사는 것도 아닌데 온 집안에 울려 퍼질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똥~ 다~ 쌌~ 어~ 요~." 



4살인 둘째 밥을 먹이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널다가도, 양치질을 하다가도 나는 그녀의 호출에 달려가야 한다. 깔끔한 날엔 휴지만으로 마무리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마치 오랜만에 풀메이크업을 한 날 이중세안을 하듯 꼼꼼하게 물티슈로 2차 작업까지 해줘야 한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 해맑은 아이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상쾌한 표정으로 팬티와 바지를 쓱 올린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면대 앞 계단으로 향한다. 손은 이제 알아서 잘 씻으니, 아니 잘 씻길 바란다. 가끔 손에 거품이 남은 채로 "내 손 깨끗해!"라며 과일을 집어먹기도 하니까. 


하지만 손 씻는 것까지 지켜봐 줄 여유가 없다. 나는 그렇게 황급히 화장실을 나온다. 아직 끝나지 않은 둘째 밥 먹이기, 설거지, 빨래 널기, 양치질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이가 기저귀를 차던 시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기저귀만 떼면 얼마나 편할까?"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치 그것이 육아의 한 고비를 넘기는 일처럼 여겼다. 



그런 바람을 누눈가 들어주신 걸까. 4살 한여름의 어느 날, 아이는 기특하게도 화장실에서 스스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변기 앞에 마주 보며 쪼그리고 앉아 쪼르르 소리를 들으며 환호했던 그 순간. 그런 일이 내게 이렇게 기적처럼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적 같은 일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일상이 되는 법. 고양이가 살금살금 걸어가듯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5살이 되었고, 유치원을 다니며 쉬는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마지막 관문, 똥 닦기다. 



초보 엄마의 야무진 추측으론, 아이가 6세 후반쯤 되면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나는 똥을 싸고 나면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에게 똥 닦는 방법을 알려줬다. 



혼자 똥 닦는 법

1. 휴지를 6칸 뜯어 가지런히 접는다. 
2.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다. 
3. 엉덩이를 위로 살짝 치켜든다. 
4. 손에 휴지를 들고 엉덩이 밑으로 가져간다.
5. 똥구멍에 휴지를 대고 앞에서 뒤로 똥을 부드럽게 닦는다. 
6. 휴지에 똥이 묻어 있으면 반으로 접어 다시 닦거나, 새 휴지를 뜯어 닦는다. 
    더 이상 휴지에 똥이 묻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깨끗하게 닦는다. 
7. 일어나서 팬티와 옷을 입는다.
8.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린다. 
9. 손을 비누로 깨끗하게 씻는다. 


그래서 이제 아이가 혼자 똥을 잘 닦느냐고. 이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 아이는 앞에서 뒤로 닦는 그 중요 포인트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거꾸로 닦았다. 처음엔 분명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본성이 어디 가겠는가. 


답답함을 참지 못한 성질 급한 초보엄마는 결국 폭풍 잔소리를 퍼부었다. 기분이 상한 걸까. 그 뒤부턴 안 한단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큰 목소리로 불러댄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일보후퇴가 필요한 순간. 당분간 내가 더 닦아 주다가 한 두 달 뒤에 다시 도전해보려 한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다시 시도했을 때, 그사이 조금 더 자란 아이가 이전보다 수월하게 해내는 모습을 본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언젠가는 분명 혼자 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기에, 조급해하지 말자고, 아이에게 다그치며 잔소리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어쩌면 이건 아이만의 도전과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성질 급하고 까칠한 엄마가 개과천선해서 다정한 관찰자로 거듭나기 위해 부딪혀야 할 수많은 도전 과제 중 하나 일지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꿈꾸는 육아의 종착점은 결국 '아이들의 독립'일 것이다. 그날이 언제쯤 찾아올지, 육아의 한가운데 서있는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작은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아이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것이고,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엄마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다 보면, 아이들에게 더 이상 부모의 손길이 아닌 다정한 눈길 만으로도 충분해지는 날이 올 테지. 


그날이 바로 우리 가족의 '독립의 날'일 것이다.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허리를 굽혀 아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살짝 미소 지으며 조용히 말해본다. 


"엄마가 도와줄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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