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맘의 서재] 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 Square Peg
토드 로즈 Todd Rose를 알게 된 건 Amazon Books의 추천 알고리즘 덕이었다. 터틀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온라인 서점에서 ADHD 관련 책들을 검색하다가 "Square Peg"이란 책을 발견했다. (Sqaure Peg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별난 사람들을 '둥근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못이나 말뚝(square peg in a round hole)'에 비유하여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 ADHD를 가진 남자아이
-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고 성적이 뒤처졌으며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음
- 고등학교 중퇴
- 10대 출산
- 최저시급 일자리 여러 곳을 전전
- 현재 하버드 대학 교수(!)
이런 인생 역전이 가능한가? 꼴찌가 서울대 갔다는 공부법 책들을 보긴 했지만 보통 공부머리가 있는 학생이 어려운 환경을 노오오오력으로 극복하고 입시에 성공한 스토리들이었다. 반면, 토드 로즈의 이력은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주의가 산만하고 공부머리가 있기 힘든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하버드에 입학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를 업으로 하는 하버드 대학 교수까지 되었다.
토드 로즈라는 사람의 성장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지면서 Sqare Peg 책의 한글 번역판 "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 구입 버튼을 클릭한 순간, 공동 저자 캐서린 엘리슨 Katherine Ellison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같이 연구한 학자일 것 같다는 추측과 달리 캐서린 엘리슨은 ADHD 진단을 받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였다. 학교와 집에서 문제를 겪는 아들을 키우며 고민하다가 토드 로즈의 하버드 입학 소식을 실은 신문기사를 보고 그를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 만남으로 토드 로즈의 성장 스토리는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캐서린 엘리슨의 도움을 받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책으로 출판된 것이었다.
저자 토드 로즈는 현재 하버드 교육 대학원 교수로 교육 신경과학(Educational neuroscience)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변형가능성(variability)이 학습과 교육에서 갖는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여 개개인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심리학이나 교육 이론보다 복잡계 complex systems 이론과 최근 신경과학 neuroscience 연구를 통해 자신의 성장 스토리, 나아가 개인의 학습 과정을 이해한다. 복잡계 complex systems 이론은 시스템의 여러 요소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쳐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연구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물리학에서 생물학에 이르는 폭넓은 학문에 복잡계라는 렌즈를 적용하고 있으며,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마음두뇌교육 센터 Mind, Brain, and Education Center에서도 인간의 학습에 대한 연구에 복잡계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현대 신경과학 연구들은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토드 로즈가 제시하는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그는 복잡계와 신경과학에서 나온 개념들을 자신의 성장 과정에 비추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본인과 같은 square peg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지원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그리고 인식한 것에 반응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우리는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하고 보유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하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호기심을 끄는 정보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유형에서 제각각 다르다. 이런 차이 중 일부를 우리는 그동안 '장애'로 인식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런 관념은 변형가능성(variability)에 대한 지나치게 편협한 관점으로 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한다. 이런 시선은 환경과 상황의 중요한 역할을 무시한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는 최악의 경우 도박, 마약, 알코올 남용 같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최선의 경우 성공과 행복의 기초가 되는 호기심의 토대로 작용한다. 어느 쪽으로 발현할 것인가는 아이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ADHD 진단은 아이의 독특한 장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지원하기 위한 출발점(해결책이 아니다)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도움이 된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것과 반대로 현대 신경과학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진 생각이나 행동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최선의 교육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아이의 감정 상태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토드 로즈는 중학교 내내 따돌림당해서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스쿨버스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방과 후에 맞는 등 학교폭력을 직접 겪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는 불안과 공포, 우울한 감정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는 원래 낮았던 본인의 작업 기업 능력이 더 떨어지고 충동성이 높아졌다고 기억한다.
(작업 기억이란 일차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동안 마음속에 정보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인데, 학업 성적을 예상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간단한 곱셈을 할 때도 정보를 잠시 머릿속에 보관해야 한다. 작업 기억이 나쁘면 사회적 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트 로즈는 본인이 대화할 때 사림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기억하는 작업 기억 능력이 떨어져서 대화의 기술이 매우 미숙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생각난 것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끔은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불쑥 본인 생각을 말해버린다는 것이다.)
학교 폭력은 아이를 바보로 만든다.... 우리 몸은 위협을 느낄 때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뇌와 몸속으로 분출한다. 오랜 기간 코르티솔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기억과 집중을 담당하는 해마 hippocampus라는 뇌 부위가 손상될 수 있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안 그래도 낮은 수준인 작업 기억 능력이 더 떨어지고 자기 통제도 자취를 감춘다. 보통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ADHD 진단받은 아이들이 친구를 갖고자 노력한다면 대부분 아이의 학교 생활이 좋아지고 성적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감정이 강력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대개 상황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이는 다른 환경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행동하는 아이에게 장애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부당한 선입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행동은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의지에서 100 % 나온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생리적 상태, 과거 경험, 현재 처한 상황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ADHD 진단을 받은 토트 로즈는 어린 시절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을 계속해서 선생님들을 화나게 하고 처벌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등록한) 상급 역사 시간에 만난 선생님은 틀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지는 토드 로즈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 비판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한다고 칭찬했다. 이후 토드 로즈는 적어도 역사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되었다. 동일한 행동이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르게 평가받은 것이다.
토드 로즈는 이후 대학에 들어가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학습의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갈수록 집요한 질문이 늘어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이들의 뇌가 가장 영향받기 쉬운 시기(탐구심이 가장 강한 시기)에 우리는 엄격한 순응을 강요하고, 대학에 간 다음(머리가 이미 굳은 다음)에 호기심과 창조성에 다시 불을 지피라고 한다"고 비판하며, 이는 교육제도가 환경과 상황 속에 잠재하는 변형 능력을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피드백루프는 생리적 상태와 상황이 상호작용하며 서로 강화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나비의 날갯짓을 기억하라. 아이가 오늘 살면서 경험한 작은 변화가 내일은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이해한다면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 중 약 60%가 적대적 반항 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ODD) 진단을 받는다... 화를 잘 내고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어른에게 과도하게 대들고 규칙을 의심하며 자신의 실수나 행동을 남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는 증상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병리학적 증상이라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치명적 피트백루프의 결과일 확률이 높다. 아이가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경험하면 이러한 피드백루프가 형성되고, 이런 상황에 빠진 아이는 주변 환경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아이를 싸우기 좋아하는 본성을 타고난 환자로, 고쳐야 할 생물학적 결함이 있는 환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항심을 쌓아왔을 확률이 훨씬 높다.
터틀맘에게 이 책의 주인공 토드 로즈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그의 어머니 라이다 로즈 Lyda Rose 였다. 말썽꾸러기 아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키워온 이 씩씩한 엄마가 선택했던 교육법 중에서 토드 로즈가 효과적이었다고 기억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말썽꾸러기 토드 로즈의 엄마는 훗날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사람들에게 불쾌함과 짜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모른척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단다. 그래서 언제 치고 나가야 좋을지 고민했지.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참았어. 물론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널 공격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발포 준비를 했지!"
(이런 용감한 엄마 같으니라고!!! 터틀이 놀이치료 선생님이 말하는 항상 터틀이 편이 되어주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터틀이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빨리빨리 제대로 설명 못하면 온전히 편을 들어주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 야단치고 넘어갔는데 이런 엄마도 있네.)
토드 로즈의 엄마는 아들 때문에 친구를 잃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맞서기도 했지만 결국 아들을 지켜냈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위해 출정에 나서는 엄마의 늠름한 모습을 보는 것은 (비록 비밀스러운 감정이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고등학교와 교회의 선생님들은 모두 엄마를 무서워했다."
(이 아들이 엄마를 얼마나 든든해했는지 느껴진다. 터틀이한테도 어느 때나 든든한 '믿을 구석'이 되어줄 사람은 나뿐이구나..)
심리학자 Bob Brooks에 따르면 능력의 섬 Island of competence 이란 스스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자존감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작은 거점을 의미한다.
부정적 태도는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정적 태도는 아이의 환경을 긍정적인 영향으로 채워줘야 사라진다. '능력의 섬'을 구축하고, 그 섬들을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토드 로즈의 엄마는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들이 진정으로 잘한다고 느낄 수 있는 분야, 더 나아가 빛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엄마의 취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토드 로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농구팀에 들어가자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 내가 뛰는 경기는 빠짐없이 관람했을 뿐 아니라, 엄마는 밤늦게까지 마당에 나와 내 리바운드 연습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성적이 떨어져 학교에서 나를 농구팀에서 내보내려고 했을 때는 담당 소아과 의사를 학교로 데리고 가 내가 농구마저 그만두면 그나마 남아 있던 학교에 대한 미약한 애정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증언을 하도록 했다.
(대단한 엄마다! 아들이 농구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게다가 성적이 떨어져서 농구팀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담당 의사까지 동원해서 농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다니... 터틀이도 뭐든 능력의 섬을 찾도록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지만 이제부터) 지치지 말고 지원해 줘야겠다)
인간의 활력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Brian Little에 따르면 원기를 회복하는 틈새 restrorative niche는 자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며 이는 행복감을 증진하는데 효과적이다.
토드 로즈의 엄마는 아들 때문에 직면했던 무수한 고난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결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모르몬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스로 다잡기 위해 신앙에 의지했다.
둘째, 일주일에 세 번씩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에어로빅을 배우러 다녔다.
셋째, 주변에 지원군을 확보했다. 함부로 토드 로즈를 판단하지 않는 여동생에게 일주일에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었고,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토드를 버릇없이 키운다고 비난하자 자신을 응원해줄 지원군으로 심리학자로 일하던 친구 한 명과 여동생, 어머니(토드 로즈의 할머니)를 확보했다.
(이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터틀이에게 같은 얘기를 무수히 반복하고 기다리고 재촉하면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에 힘들었는데, 책에서 square peg 아이들과 씨름하는 부모들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만 해줘도 이렇게 마음이 한결 가볍구나... 우울함에 빠지지 말고 원기를 회복하는 틈새를 확보하고 계속 지켜서 힘을 내야겠다)
우리는 대개 양육을 일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청소년기라는 불길 속을 헤쳐 나오는 동안 엄마의 성격은 달라졌다.
(토드 로즈, 2014)
터틀맘에게 이 책은 토드 로즈라는 실제 인물의 생생한 성장기를 보여주고, 터틀이 키우기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토드 로즈의 거침없이 솔직하고 상세한 자전적 이야기는 그와 부모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토드 로즈의 부모의 모습은 무엇보다 위로와 희망을 준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공동저자 캐서린 엘리슨이 ADHD 진단을 받은 아들을 키우며 쓴 책 Buzz: A Year of Paying Attention을 알게 되었다. 터틀맘의 서재에서 다음 글에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