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작계 훈련을 받으러 동네 뒷산으로 올라갔다. 마른 풀이 있는 무덤을 지나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원들 옆에서 나는 총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로 마른나무를 봤다. 참나무 가지 끝은 갈색 껍질이 막 벗겨지고, 머지않아 꽃으로 잎으로 필 꽃눈들은 바위 틈새에 자라는 거북손처럼 푸른빛을 한 모금 머금었다. 바닥에 쌓인 낙엽이 흙과 자갈에 갈린 채로 어두워져만 갔다. 솜털이 흔들릴 때마다 바람이 일었고 나는 목을 움츠렸다. 저 멀리 지나가는 차가 보였다.
문득 그림자가 보드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햇살로 인해 그늘이 시퍼렇게 핀 동안, 차가운 총을 집는 내 손은 점점 감각을 잃었다. 나는 총에서 잠시 손을 떼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한 총을 다시 잡으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돌아오면서 그 무덤 옆을 지나갔다. 내가 본 꽃눈은 나중에 어떤 잎이 될까.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이 추위를 잠시 몰아냈다. 이윽고 내 안에 있던 웅숭깊은 생각 하나가 수풀 사이로 불쑥 나왔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태어나서 앓다가 꽃 피우며 죽을 뿐이었다. 어느 자리가 무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자리가 꽃자리로 향긋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흔들리는 개나리 또한 결국 찬바람을 뚫고 태어난 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