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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Nov 09. 2024

『별일 없이 산다』

Part 8. X-X-94

  장기하의 음악은 가사와 아주 밀접하다. 그이의 가사는 그 자체로도 음악적 뉘앙스가 충만하다. 그 점을 헷갈린 사람들이 초창기 장기하의 음악을 오해했다. 이 앨범의 메시지는 그저 ‘떡밥’에 불과하다. 거짓 선지자의 ‘높으신 뜻’을 풍자한 「아무것도 없잖어」의 (성악 코러스를 동원하는) 쓸데없는 엄숙주의는 차라리 ‘메시지’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라 보는 게 타당하리라.


  이 앨범의 ‘오마주’ 또한 기실 오마주의 대상이 지닌 ‘유산’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는다. 「별일 없이 산다」에서 드러나는 배철수 보컬의 프레이징이나,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이 풍기는 소위 ‘복고’ 풍의 사운드는 늘 장기하의 사운드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또한 뚜렷한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그이의 음악에 대한 인식 저변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그리고 그이가 토킹 헤즈의 ‘율동’을 벤처 마킹한 흔적이 드러나는)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도, 그는 ‘달’로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기하는 다만 ‘간다’며 손가락을 들 뿐이다.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정중엽은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유려한 베이스 연주뿐만 아니라, 「싸구려 커피」의 눅눅한 뉘앙스를 더욱 살리는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고, 「오늘도 무사히」의 속도감을 다 잡기는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미미 시스터즈가 리드 싱어 역할을 한) 「그 남자 왜」의 리듬 라인에 텐션을 부여하기까지 한 그이의 베이스 연주는, 포크를 기반으로 삼은, 이 앨범에 두툼한 뒷심을 제공했다. 「나와」의 시치미 뚝 떼는 장기하의 보컬은 정중엽의 정확한 베이스 연주로 더욱 강력해졌다.           


  장기하의 (말맛과) 구음 친화적인 보컬은 이 앨범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냈다. 「느리게 걷자」에서 드러나는 그이의 보컬은 이 앨범에 이르러 훨씬 선명한 목소리로 드러나며, 훗날 이어지는 「쌀밥」 같은 곡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그가 사용하는 코러스 또한 「오늘도 무사히」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곳에서 (이미 완성형인) 그이의 인장이 들어간 채로 등장한다. 그이는 그저 자신만의 (박자가 담긴) 목소리로 계속해서 노래 부를 뿐이다.      


  (일종의 역발상에서 시작한) 개성을 어필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이는 (근원적인 권태감을 유지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나와」와 같은 곡에서도 정확한 딜리버리와 더 정확한 프레이징을 동시에 어필하는 그이의 보컬은 그 자체로도 우리가 경험할 수 없었던 ‘느림의 미학’을 청자에게 들려준다. 그렇기에, 이 곡 또한 어떤 종교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없다. (픽션의 영역에 속하는) 「싸구려 커피」에서 보이는 가난의 디테일을 심드렁하게 훑는 그이는 (이 앨범에서 절실한 감정을 토로하는 듯한) 「오늘도 무사히」에서도 마찬가지로 심드렁하다. 콤플렉스에 대해 말하지만, 그 모든 콤플렉스와도 거리를 둔다. 분명 포크록 앨범의 외형을 갖췄다. 그러나 이 앨범의 정체는 기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의 시큰둥함을 지닌 참신한 모던록 앨범이다.  


  장기하는 (식은 커피의 온도를 유지한) 이 앨범에서 그의 ‘이상한’ 소 걸음을 완성했다. 이 앨범 이후에 나온 그이의 앨범은 어쩐지 이 보법의 지구력 테스트 검사 결과지같이 들린다. 지쳐 쓰러질 법도 한데 그이는 여전히 멀쩡히 감정과 속도를 유지하며 걷는다. 그 때문인지 그이의 최근작은 반드시 전작보다 어딘가 한 군데는 강력해진다. 나는 늘 그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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