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8. X-X-77
「쿠쿠루쿠쿠 비둘기」의 끝에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제주바람 20110807」으로 넘어가도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우연이 만든 ‘도큐먼트’를, 기나긴 전주처럼 사용하면서 후반부에 이르러 밴드 연주를 잠시 집어넣을 따름이다. 듣는 내내 감탄했다. 이걸 들려주려고 그렇게 흔들었구나. 이걸 들려주려고 수많은 흔들림과 수많은 번민을 거쳤구나. 앨범의 긴 줄임표 같은 이 곡은, 사방을 흔드는 앨범의 사운드만큼이나 사람 마음을 흔든다.
혼란스럽게 이지러지는 자아가 어느 순간 드러낸 약간의 틈으로밖에 꿈을 말할 수 없다는 듯, 이 앨범은 복잡한 구조의 사운드, 다양한 층위의 톤을 통해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단어나 사운드 또한 콜라주의 한 조각으로 작용하는 이 앨범에서, 그들이 여태까지 만든 틀은 풍화작용을 거친 것처럼 잘게 부서진 채로 남았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울창한 ‘숲’을 조성하면서도 군데군데 울타리를 세워둔다는 데에 있다.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이나,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같은 곡이 그렇다. 둘 다 일정한 ‘장소’를 지정한 곡이다. 꿈을 이야기하는 데도 일종의 키워드가 존재하듯이, 이 앨범에도 일정한 제재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타인의 부재’를 재재로 삼는다. 이 앨범의 조각난 사운드는 이 재재를 넘어가는 순간의 생각을 자연스레 흩어버린다.
「꿈속으로」나,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 같은 곡에서 구음을 즐겨 쓰는 남상아의 보컬도 매력적이지만, 「쿠쿠루쿠쿠 비둘기」에서 들려주는 남상아 보컬의 엘레지는 듣는 이의 심금을 잔잔히 울린다. 그이의 보컬은 이 앨범에서 표현의 다양한 영역을 한층 더 넓히는 데 성공했다.
(초창기 3호선 버터플라이의 몇 곡을 생각하게 하는) 「끝말잇기」의 개러지 록으로 산뜻하게 끝나는 앨범은 결국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사운드와도 깔끔하게 작별한다. 모던 록이 듣는 이의 마음에 차갑게 식히는 장르라면, 이들의 거리두기 또한 모던 록이 다루고 있는 특성이라고 말해야 하리라. 그러나 이 앨범은 모던록의 특성을 언급하기보다, 그들이 말한 말이나 사운드에 먼저 집중하고 싶은 유혹이 먼저 인다. 그저 김남윤이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맡은 이 앨범의 사운드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싶다. ‘붉은눈시울망초’와 같은 말이나, 「꿈속에서」의 뒤채는 구조, 모든 정념과 욕망을 시냇물 옆에 흐르는 바위처럼 배치하며 흐르는 이들의 유려한 사운드를 더 듣고 싶다. 물은 독특한 물결을 남기며 도도히 흐르고, 물결 속에 가득한 모래가 하구에 이르러 가라앉는다. 「제주바람 20110807」을 들으며 느낀 감동은 바로 그렇게 흐른 강의 너른 폭을 비로소 눈으로 확인할 때 느끼는 반응과 진배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꿈의 결은 결국 삶의 결에서 모티브를 얻는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이들이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에서 돋아난 새로운 강물이었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그러므로 이 앨범은 차라리 퇴적의 기록이라 불러 마땅하리라. 에고를 내세우지 않고, 특별한 슬로건을 내세우지도 않은 채, 천천히 쌓이면서 생긴 아름다움이 스스로 그러하게 [自然] 말하게끔 둔다. 이 앨범은 스스로 아름다운 소리가 물결처럼 흐른다. 감정과 정념과 꿈과 사랑을 거치며 힘겹게 도착한 물결은 마침내 너르고 푸른 바다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