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8. X-X-75
「종소리」의 긴 후주가 이 앨범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힌다. 이 앨범은 말 그대로 끝까지 뻗는 앨범이라고. 근데 그게 지루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 소리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기실 모든 록이 그렇지만 유달리)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전주니, 후주니, 벌스니, 브릿지니, 훅이니 하는 송 폼(Song form)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옛날의 레코딩 방식처럼,) 아날로그 릴 테이프에 녹음한 이 앨범의 소리는 철저한 고립 상태에서 제작했다. 신윤철이 자신이 만든 옛날 곡과 신곡을 이 앨범에 같이 실었다. 옛날 곡은 이 앨범에 이르러 비로소 본래의 매력을 되찾았다. 「따라가면 좋겠네」는 퍼즈 톤 기타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고, 「서로 다른」 또한 매력적인 본문만큼이나 매력적인 후주(後註)를 달았다. 이 앨범에서 보컬을 맡은 신윤철은 천진난만하고도 순박한 프레이징을 지닌 목소리로 앨범의 곡이 지닌 무드와 뉘앙스에 충분히 부합하는 목소리를 청자에게 들려줬다.
애당초 이 앨범은 결코 심각한 앨범이 아니다. 「나무랄데 없는 나무」는 펀(Pun)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종소리」의 언어는 폭발하는 세계를 다루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따라가면 좋겠네」에 등장하는 기타 사운드는 약간의 장난기가 어렸다. 「중독」의 신디사이저나, 「언제나 오늘에」의 인트로는 곧이어 등장하는 미니무그 리듬에 의해 곧바로 분위기가 일순간 뒤집힌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어어” 하는 순간에 해탈한다. 「서울의 봄」이나 「고양이의 고향 노래」와 같은 곡마저도 어느 순간 현실에서 벗어나 휘잉 날아가지 않던가.
이 앨범의 폭발하는 부분은 전반부에 있지만, (마치 「종소리」의 후반 연주가 암시하듯) 이 앨범의 진경은 「중독」에 뒤이어 등장하는 세 곡에 몰려있다. 퍼즈톤 기타가 끝끝내 섬의 고독과 자존의 뉘앙스를 길게 뻗치는 「섬」이나, (이 앨범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옷을 입은) 개별성에 대한 찬가인 「서로 다른」, 사이키델릭의 환각성이 깃든 사운드를 밀어붙인 「꿈속에서」는 앨범이 지닌 의의와 사운드를 확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노래로 인해 소외되었던 감정과 음을 자연스럽게 (복구시키며) 소환한다. 언어와 시스템의 인식 체계를 벗어나 저마다 아름다운 섬들로 일렁이는 다도해가 그들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깃들어 있다.
이 앨범에 있는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한 신윤철이 (미니 무그, 솔리나 스트링 앙상블을 비롯한 신디사이저와) 앨범 전체의 (페달 스틸 기타를 포함한) 기타 연주와 보컬 그리고 레코딩 엔지니어링까지 맡았지만, 「서울의 봄」이나 「중독」 같은 이채로운 곡을 작곡한 김정욱 또한 본래 역할인 베이스 연주뿐만 아니라, 「꿈속에서」의 전자 탐푸라 연주 또한 능숙하게 해내며 제 몫을 다했다. (연주곡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작곡한) 신석철은 「종소리」의 연타 연주에서도 정확성을 잃지 않는 훌륭한 드러밍으로 이 앨범의 기반을 한층 더 굳건히 했다.
보너스 트랙인 「따라가면 좋겠네」의 레게 버전은 해당 곡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세계를 수놓는 길은 무수히 많다는 점을, 그들은 가지치기하지 않고 키운 이 앨범의 음악적 ‘잔뿌리’로 증명했다. 그 잔뿌리가 힘껏 토양을 움켜쥐지 않았다면, 우리는 시스템의 홍수 속에 무수히 많은, 섬세한 감정의 영토를 뭉텅 잃어버렸을 것이다. 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