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두 대와 목소리로만 앨범 전체를 이끌었던 첫 앨범과 기타 한 대와 목소리로만 앨범 전체를 꾸린 이 앨범은 단출한 사운드라는 공통점에 묶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해 겨울」의 기타 아르페지오와 더불어 나오는 양희은의 선 굵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공통점은 그저 편성 상의 공통점으로만 남는다. 처음의 훅이 끝날 때, 기타는 잠시 그 소리를 줄이며, 양희은의 보컬이 지닌 격정을 느낄 공간을 청자에게 건넨다.
양희은의 목소리가 주는 셈여림이 이 앨범의 곡에 풍성한 감정을 부여한다. 페르난드 소르(Fernando Sor)의 에튀드 중 한 곡에, 양희은이 직접 쓴 가사가 붙은 「나무와 아이」에서, 양희은의 보컬은 아이가 등장하는 대목과 바람이 등장하는 대목을, 나무가 등장하는 대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리게 부른다. 영원을 상징하는 나무와 변화를 상징하는 (외로운) 소년의 대비를 자연스레 표현하는 양희은의 세심한 보컬은 소년의 생각과 나무의 생각이 서로 생각하는 모습을 대구(對句)로 표현한 대목마저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가을 아침」에서 양희은의 보컬은 셈여림과 강조만으로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그이의 의성어(‘딸각딸각’)와 의태어(‘엉금엉금’)를 부드럽게 부르기도 하고, ‘커다란 숨’을 부르는 대목에서는 호흡을 가다듬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시끄러운’을 강조하면서 시끄러운 조카들의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그이의 표현력은 단순한 곡 구조의 「가을 아침」을 풍부하게 만든다. 뿐인가. (「11月 그 저녁에」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저 바람은 어디서?」에서 차근차근 노래하는 양희은의 보컬은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에 햇살을 한 줌 더하고, 「그리운 친구에게」의 수많은 언어를 엽서 쓰듯이 가지런히 부르는 그이의 보컬은 위안과 안부와 걱정에 맑은 가을바람을 더한다.
이 앨범의 「사랑 - 그 쓸쓸함에 대하여」 또한 양희은의 이런 결이 없었던들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을 테다. 격정으로 시작된 모든 문장의 끝을 슬며시 놓는 그이의 보컬은 사랑의 결이 쓸쓸함으로 바뀌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훅을 두 번이나 강조되는 (이 앨범에서는 꽤 특이한 구조의) 곡임에도 만남보다 이별에 중점을 두는 가사와 감정 덕분에 더욱 쓰라리게 들린다. (양희은의 목소리로만 초반의 벌스를 채우는) 「가을 아침」의 훅에 등장하는 스트로크 연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채운 기타 연주 또한 충분히 완급을 조절하여, 양희은의 목소리에 사려 깊은 여운을 보탠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여성 프로듀서인 제럴 벤자민(Jeral Benzamin)의 프로듀싱과 그래미 수상작의 앨범을 여럿 녹음한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acDonald : 미국에서는 A.T. Michael MacDonald의 명의로 활동 중이다.]의 레코딩 엔지니어링과 에디팅에 의하여 음이 울리는 공간마저 귀히 여기는 사운드로 거듭난 이 앨범은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을 낭송하는 「잠들기 바로 전」으로 끝난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이 곡의 내레이션에서도 특유의 표현력을 발휘한다.) 사랑의 격정과 인생에 대한 그이의 이 그림 없는 ‘이야기’는 우리의 눈시울에 맺힌 맑은 눈물 한 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으며 ‘좋은 꿈을 꾸라’고 말하는 듯하다. 누군가의 안부 인사를 들으며 잠드는 일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