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77-95-0
김효국이 만든 신디사이저 연주곡 「파랑새」로 여닫는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해 전인권의 솔로 3집이었다. (또한 이 앨범은 그의 밴드인 ‘파랑새’의 첫 앨범이기도 했다.) 전인권은 (「돛배를 찾아서」를 제외한) 직접 만든 네 곡의 신곡을 이 앨범에 실었다. 여기에 전인권이 거쳐 간, 여러 앨범에서 먼저 나왔던 네 곡을 그는 새로 녹음해 실었다. 그가 데뷔 때부터 줄곧 취입했던 「맴도는 얼굴」(전인권은 이를 「헛사랑」으로 개작했다.), 『들국화』(1985)에서 조덕환이 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축복합니다」, 『1979~1987 추억 들국화』(1987)의 (알 스튜어트[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을 번안한) 「사랑한 후에」가 바로 그 네 곡이었다.
허성욱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 들국화 버전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인트로를 하몬드 오르간 연주 인트로로 멋지게 바꾼 김효국의 ‘솜씨’는 이 앨범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었다. 「돌고, 돌고, 돌고」의 근간에 자리한 그의 오르간 연주는 반복을 거듭하는 삶에 대한 전인권의 느긋한 성찰을 빛냈다. 그의 오르간 연주는 「헛사랑」의 독특한 리듬 또한 (오승은의 베이스 연주와 허성욱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멋지게 바꿨다. 「사랑하고 싶어」에서 (세션으로 참여한 최구희의) 리드 기타 연주를 받는 그의 오르간 연주 또한 일품이었다.
전인권의 전작인 『1979~1987 추억 들국화』(1987)에서 공동 파트너였던 허성욱이 이 앨범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맡았고, 들국화 시절부터 전인권과 협업한 최구희가 또다시 리드 기타 연주를 맡았다. 최구희가 리드 기타 솔로를 맡은 이 앨범의 「사랑한 후에」는 함춘호가 기타 솔로를 연주한 전작의 「사랑한 후에」에 버금간다.
앨범은 후반부에 이르러 「돌고, 돌고, 돌고」의 ‘순환’ 속에 묻힌 어둠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듯하다. 「사랑하고 싶어」의 절규는 ‘사랑하고 싶다’는 말만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가을비」는 문장이 채 되지 않는 독백이 말 그대로 흘러내린다. 「사랑하고 싶어」의 비통한 의지가 「축복합니다」의 달관과 체념으로 끝나는 이 한 사이클은 돌고 도는 세상과 거기서 벗어나 어디론가 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한꺼번에 껴안는 듯하다.
「아직도」는 바로 이 ‘체념’의 심연(深淵)을 청자에게 절절하게 들려줬다. 허성욱의 우수 어린 피아노 연주와 최구희의 슬픔 어린 리드 기타 연주 사이에서, 전인권은 거의 바스러진 문장으로 이뤄진 가사를 간신히 이어 불렀다.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가 만든 가장 깊은 어둠이 이 ‘흐느낌’ 속에 있다. 입술을 씹어가며 간신히 참는 동안에도 기어이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이 앨범의 어둠 속에 숨어있다. 곡은 그 울음소리 가득한 심연을 통해, ‘과거의 사랑’이라는 열쇠로 다 풀 수 없는, 비감에 젖은 우리네 지난날을 돌아보는 듯하다.
전인권은 이후 달관을 벗어던지며 (또 한 장의 앨범을 내놓으며) 그의 80년대를 마감했다. 곡마다 밀도 높은 감정을 부여하는 그의 보컬(이 지닌 집중력)은, 이후에 나오는 그의 솔로 앨범에선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한바탕 웃음’으로 시작하여 ‘어두운 흐느낌’으로 천천히 기우는 이 앨범은 그저 이 훌륭한 소리가 실은 시대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더는 ‘행진’ 하지 못한 채 제자리로 맴돌며) 은밀히 증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