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웃긴 가게』

PART 3. 87-99-0

by GIMIN

「집」을 부르는 이상은의 ‘나른한’ 보컬이 ‘피로’에서 왔다는 점을 「사막」이 말해준다. 그이는 분명 전작에 이어 자신의 유장한 멜로디를 웅숭깊게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미친 도시’를 으스스하게 부르는 그이의 보컬이나, 해당 곡의 마지막에 부르는 그이의 바삭거리는 허밍은 이 유장함이 결국 고갈된다는 사실을 청자에게 넌지시 일렀다.


이 앨범에 실린 여러 수록곡의 원 영어 가사는 이 앨범에 뒤이어 나온 (그이가 ‘리채[Lee-Tzsche]’라는 명의로 발매한) 『Lee-Tzsche』(1997)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은은 이 곡들의 가사를 전부 한국어로 번안하여 불렀다. 영어의 부드러움을 잃은 가사들은 전부 거칠기 이를 데 없다. 사랑에 관한 노래라고 말하는 「세레나데」의 감미로운 사운드는 이상은이 내뿜는 건조한 가사 때문에 휑함이 배가된다.


이 앨범에 구축한 진득한 피로의 미로 속에서 모든 것이 거칠게 변한다. 「Super Eraser Medium」의 ‘철학’에는 (‘얼터너티브’의 기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탈진’에 가까운) 개인적인 피로가 사운드에서 드러난다. 그래서였을까. 이상은은 이 앨범의 음악을 타케타 하지무[竹田 元]의 ‘도움’만으로 꾸렸다. 그는 이 앨범에 실린 이상은의 음악을 편곡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앨범에서 편곡자과 연주자, 레코딩 엔지니어와 믹싱 엔지니어 역할을 한꺼번에 도맡았다. (PA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히사이시 조[久石 譲]에게 음반 제작 프로세스를 배운 엔지니어 오키츠 토오루[沖津 徹]가 이 앨범의 마스터링 작업을 전담했다.) 그 결과, 「새빨간 활」과 같은 소품마저도 집중력과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사운드를 입었다.


이 앨범의 부덕함과 더러움에 대해서도 구태여 장식을 달지 않고 내보이는 미덕을 발휘한다. 앙상한 뼈로 이뤄진 듯이 보이는 이 앨범은 그러나 번뜩이는 안광으로 세상을 꿰뚫어 본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사람은 다 사람」이 단순한 질문에서 비범한 결론을 이끄는 이상은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아이콘」의 차가운 말은 이 앨범의 앙상한 사운드로 인해 문득 드라이아이스의 차가움을 제대로 구현한다. 「외롭고 웃긴 가게」의 풍자적인 성격 또한 이러한 사운드로 인해 골계미와 헛웃음이 돋보이는 곡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비가」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타 노이즈 사운드는 ‘비’와 ‘비가’의 음가로 시작한 흔들림을 스산함으로 문득 포섭한다. 이 앨범의 등장하는 수많은 방황과 혼란은 마침내 「꿈」 속에서 가지런해진다. ‘코요테’와 ‘흰 꽃’ 사이를 고민하는 이상은의 목소리는 통증으로 가득하지만, (이 앨범에서 예외적으로) 공간감을 강조한 사운드로 인해 아득하다.


추위로 움츠렸던 몸이 햇살을 받아 문득 나른해질 때가 있다. 「어기여 디여라」는 바로 그 나른함에 몸을 맡긴 채, 배를 타고 강물 위에 떠다니며 천구에 가닿는다. 다른 사람의 눈을 ‘검고도 맑’다고 경탄하며, ‘씨앗을 뿌’리는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상은의 ‘배’는 비범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이가 문득 도달한 아득한 경지 위에 떠있는 듯하다. 그이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도 결국 자신의 ‘별’을 찾아 떠났다. 이 덩그러니 놓인, ‘사막’이라는 추상적인 (그리하여 파편적인) 풍경 속에서 우린 과연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은 아득히 머니 좀 더 노를 저어볼까. 어기여 디여라. 어기여 디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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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는 Public Address (System)의 줄임말이다. 주로 (전달 목적에 한하여) 대규모 공공장소의 방송 설비와 공연 음향에 대한 전반적인 엔지니어링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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