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PART 3. 76-80-0

by GIMIN

“이제 집 사기는 다 틀렸”다는 「우리들 세상」의 인트로를 듣고 잠시 두 귀를 의심했다. 「그대, 행복한가」에선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사람들이 들리고, 「아... 대한민국」에선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핍박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린다. 스마트폰은커녕, 데스크톱 컴퓨터도 많이 없었던 시절에 만든 (게다가 음반 사전 심의 제도를 거부하며 카세트테이프로 처음 나왔던) 이 앨범이 지금도 여기에도 파장을 일으킨다.


평생의 음악 파트너인 유지연과 박은옥이 참여하지 않은 이 앨범은, (훗날 꽃다지로 통합할) ‘삶의 노래 예울림’과, 극단 현장 풍물패 ‘만판’과, 전작인 『戊辰(무진) 새 노래』(1988)에 참여했던 소리꾼 권재은과 여러 ‘노래패’가 참여한 앨범이었다.(권재은은 이 앨범에서 꽹과리와 장구, 북을 연주했다.) 예울림 멤버이자, 훗날 꽃다지의 대표가 될 이은진이 이 앨범의 코러스 파트만 편곡했을 뿐, 나머지 부분은 전부 이 앨범의 곡을 만든 정태춘이 직접 편곡했다.


이 앨범은 정태춘의 ‘일탈’이 아니었다. 이 앨범에 대한 정태춘의 음악적 ‘명분’은 이미 충분히 차고도 넘쳤다. 농악을 활용한 「황토강으로」나, 「인사동」의 풍자적인 어투, 「우리들 세상」의 사설적인 선언을 굳세게 뒷받침해 준 풍물패의 연주는, 그가 데뷔 때부터 줄곧 추구한 토속적인 성격의 음악과 그 맥이 닿아 있다. 「한여름 밤」의 서정은 「버섯구름의 노래」의 ‘한탄’과 「우리들의 죽음」에 깃든 소외의 문제나, 「일어나라 열사여」의 부르짖는 목소리에 의해 본래의 ‘맥락’을 되찾았다. 그가 줄곧 말했던 ‘방황’ 또한 「떠나는 자들의 서울」에 의해 제 ‘맥락’을 회복했다. 그는 그저 당국이 거부한 곡을 버리지 않고 모아 여기에 모두 수록했다. 다시 말해,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철한 첫 앨범이었다. (「그대, 행복한가」에 흐르는 풍경은 그의 다음 작품인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사람들」로 이어진다.)


(당국의 ‘제도’를 외면하고 만든 첫 앨범이었기에,) 이 앨범은 필연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말과 로직이 처음 담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지금 들으면 꽤 사변적이고 급하며 또한 거칠게 들린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이를 단점으로 치부할 수 없다. (『공장의 불빛』(1978)이나, 운동권의 노래극 테이프 작업을 제외하고는) 당시 한국 대중 음악계에서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제작해 발매하는 일 자체가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되레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검열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곡에 ‘다른’ 목소리를 담는 데 서툴렀다는 점을 함께 폭로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차라리 한국 대중음악계가 처음으로 흘린 어혈(瘀血)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한국 대중음악의 리리시즘(lyricism)은 반드시 이 앨범과 함께 다뤄야 온전한 설명이 가능하리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난 영세상인과, 이 앨범에 ‘쫓겨나는 철거민들’, 공장에서 사고로 죽는 노동자와, 비용절감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청년. 지금 ‘그들’은 사람이나 직업이 다르니 이 두 현상이 각기 다른 현상이라고 일축한다. 이제 ‘그들’은 금지 대신 누명을 씌우고, 메시지를 금지하는 대신 메신저를 공격한다. 사람의 생명을 뺏는 대신 사람의 조건을 외면한다. 그러면서 이건 금지도 아니고 공격도 아니고 강탈도 아니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이 앨범을 과소평가한 과거의 나에게 따지고 싶다. 대체 뭐가 낡았나. 대체 뭐가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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