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52-73-0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1집에서 3집에 들어갈 곡을 ‘만들’ 당시, 산울림(곡을 만들 당시에는 이들은 팀 이름조차 없었으리라.)은 하나였다. 이 앨범엔 특히나 김창훈이 쓴 곡이 상대적으로 많이 실렸지만, 이 모든 곡엔 김창완과 김창익의 공헌 또한 ‘많이’ 깃들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앨범을 포함한) 이들의 첫 세 앨범에서 우리가 이들 삼 형제의 역량을 뚜렷하게 구분해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이 앨범의 ‘연주’뿐이다.
김창훈과 김창익이 입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들이 ‘합’을 맞춘 앨범은 4집이었지만, 산울림이라는 밴드가 써내려간 빛나는 첫 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 앨범이 장식했다. (이들의 사촌여동생인) 김난숙의 오르간 연주가 사라진 이 앨범엔 오직 이들의 연주와 노래만 들어있다.
「내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은 (한대수의 「물 좀 주소」의 인트로처럼) 연주 대신 김창훈의 허스키한 보컬이 갑작스레 곡을 시작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김창완의 기타 연주는 오르간 연주가 빠진 만큼 더 강렬해졌다. 김창완의 기타 연주가 리듬 커팅과 솔로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동안, 김창훈은 바지런하게 베이스 라인을 연주했다. (이 베이스 라인 연주는 김창훈이 전작에 녹음하여 수록한 「이 기쁨」이나 「나 어떡해」과 나름 공통점을 공유했다.)
김창완은 마치 첫 곡의 성격을 이어받는다는 듯이, 「내마음」과 비슷한, 단순한 곡 구성의 「아무말 안 해도」와「새가 되어가리」의 마지막을 그의 드문 ‘샤우팅’ 코러스로 장식했다. 여기서도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는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새가 되어가리」의 간주에서 더욱 두드러진 그의 꾸준한 베이스 연주는 김창완의 노래와 기타 연주를 확실하게 보조했다. 단지 오르간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꽤 괜찮은 사운드를 이들 삼 형제는 능히 연주했다. 김창익의 드럼 연주와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는 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1집과 2집의 폐쇄적인 성격과는 다른) 「내마음」에서 드러난 너른 황무지는 「아무도 없는 밤에」에서 ‘나’와 현실의 넓은 갭으로 바뀌었다. (이 앨범의 B면 후반부를 온통 차지한) 대곡 「그대는 이미 나」는 바로 이 드넓은 대지를 바탕으로 삼으며 정말이지 끝까지 갔다. 퍼즈 톤과 클린 톤을 번갈아 가면서 기타를 연주한 김창완과 (몰입감이 있는) 다이내믹한 드러밍을 선보인 김창익, 필링과 주법을 미세하게 바꿔 베이스를 연주한 김창훈은 이 곡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이들 삼 형제의 끼를 발산했다. 이 곡의 긴 러닝타임은 이들이 곡의 경계나, 현실이나, 언어를 벗어나, 개의치 않고 연주에 몰입했다는(그렇게 어느새 ‘너머’를 꿈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산울림은 비로소 이 앨범의 녹음에 이르러, 세 형제의 음악 모임을 벗어나 ‘록 밴드’로 거듭났다.(이들에게 있어 특히 이 곡은 셋이서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곡이었으리라.)
(상업적으로 애매한 성공을 거둔) 이 앨범은 음악 자체가 곡의 장르였던 초기 산울림의 ‘마법’을 마지막으로 발휘했다. 흥미롭게도 이 앨범을 바라보는 대중과 산울림의 차이는 기실 현실과 예술의 차이와 그 양상이 매우 비슷하다. 물론 이 또한 이들이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으리라. 이들의 ‘마법’이 이들의 ‘의도’와도 '약간' 거리가 있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