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86-64-0
이기용이 서정적인 뉘앙스를 품은 탑라인을 나지막이 부르며 ‘절름발이의 꿈’을 노래하는 (앨범에서 드물게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두드러진) 「Huckleberry Finn」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고요’한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기에 이 시선을 관조[觀照]라 이름 붙일 수 없다.) 「불을 붙이는 아이」도, 「갈가마귀」나 「첫번째 곡」도 「죽이다」도 바로 그 내려다본 곳에 자리한 듯하다.
첫 곡인 「보도블럭」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벗 삼아 위문을 권유하던 남상아의 목소리는, 디스토션을 잔뜩 건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등장하며 ‘분노’로 타올랐다. 그 격렬한 ‘위문’을 끝으로 앨범은 「첫번째 곡」의 (불길한 뉘앙스를 품은) 베이스 솔로 연주로 넘어간다. 「당당」의 리듬 기타 연주에 착 달라붙는 베이스 연주, 「Huckleberry Finn」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서포트하는 그윽한 베이스 연주는 이 앨범의 사운드가 디스토션 이펙터를 잔뜩 건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청자에게 강력하게 어필한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기타 연주에 못지않게 (역시 이기용이 연주한) 베이스 연주 또한 중요하게 다뤘다.
이 앨범은 ‘분노’의 모든 양상을 간결하게 묘파(描破)했다. (남상아가 만든 두 곡인) 「당당」, 「Teacher says?」의 ‘풍자’, 「불을 지르는 아이」에 대한 모종의 ‘동의’, 「갈가마귀」의 ‘사랑’과 「사마귀」의 ‘갈구’가 전부 분노라는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 대목에 이르러서도 차분한 어조를 애써 유지했다.
이 앨범의 ‘분노’는 분노하는 상태(즉, ‘절름발이’인 상태,)가, 분노하는 이유와 분노하는 방향보다 우선한다. 분노하는 상태 속에서 이 ‘열불’은 계속 타오른다. 분명 이 불은 그런지로 인해 타올랐다. 그러나 그런지의 불이 사방으로 마구 뻗어나간다면, 이들의 열불은 명백히 어떤 ‘중심’을 겨냥한다.
이 앨범은 「죽이다」에서 비로고 계획과 전망을 청자에게 밝히며 끝난다. 이들이 「보도블록」 에서 친구를 외치며 같이 위문을 가자고 권유했던 이유, 「불을 지르는 아이」에서 ‘우리’의 얼굴을 조망했던 이유, 「첫번째 곡」에서 ‘나’만이 바람을 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항변했던 이유, 「갈가마귀」에서 ‘너’의 슬픈 눈을 봤던 이유, 「사마귀」에서 ‘우린 영원한 배반자‘를 말했던 이유는 ‘구름을 몰아내 우리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확신(혹은 믿음)으로 가득한 선언을 외치는 남상아의 보컬은 앨범에서 지금껏 억눌렀던 분노를 마음껏 터트렸다. 이기용 또한 이 곡에 이르러 트레몰로를 비롯한 다양한 주법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이 곡(나아가 이 앨범)의 발언을 강조했다. 투박함 속에서도 정교함을 갖춘 드러밍을 구사하는 김상우 또한 이 곡에 이르러 제대로 폭발했다.
이 앨범은 분노를 공모(共謀)하는 앨범이다. ‘모든 공모자는 연인이고, 모든 연인은 공모자’라는 통찰이 이 공모(共謀)를 뒷받침한다. 이 앨범에서 이들은 (추모의 마음을 담은) 분노로 그린 ‘지도’와 (이루지 못한 꿈이 깃든) 성냥 하나가 든 ‘성냥갑’을 청자의 손에 쥐어주며 말한다. 당신은 이미 모든 걸 들었다고. 이제는 당신이 ‘불’을 지를지 말지를 선택할 차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