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51-58-0
이 앨범엔 원래 10곡만 들어있었다. 그러나 발매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곧장 (음반사 명의가 바뀐) 재발매가 이뤄졌다. 첫 번째 재발매판엔 「이등병의 편지」의 라이브 버전이 더해졌고, 두 번째 재발매판엔 (「이등병의 편지」의 라이브 버전이 탈락하고) 「광야에서」, 「슬픈노래」, 「그대 웃음소리」가 더해졌다. 지금 우리가 듣는 이 앨범의 13곡은 바로 이때 굳어졌다.
초판의 크레디트엔 10곡을 편곡한 편곡자와 10곡에 참여한 레코딩 세션들이 사용했던 악기 종류가 상세히 적혀있다. 두 재발매 반은 이 ‘정보’를 그냥 옮겨 적기만 했다. 때문에 나중에 추가한 3곡에 대한 정보가 없다. 3곡을 누가 편곡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악기 구성으로 3곡의 편곡자를 대강 추측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대 웃음소리」는 간주의 색소폰 연주와 플랫리스 베이스 연주가 인상적으로 엇갈린다면, 나머지 두 곡은 어쿠스틱 기타(「슬픈 노래」는 하모니카가 등장한다.) 사운드의 조촐한 맛이 곡의 정조를 살렸다.
이 앨범을 들으면, 김광석은 정말 세상에 떠도는 노래 중 몇 곡을 그대로 가져와 부른 듯하다. 「그루터기」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1984)에서 ‘성치 못한’ 가사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이 앨범에서 이 곡은 원래 가사를 회복했다.) 「광야에서」는 이 앨범에서 처음 대중음악의 자장(磁場) 안으로 들어왔다. 「이등병의 편지」은 김현성이 먼저 짓고 불렀고, 전인권이 다시 불렀지만, (편곡까지 맡은) 김광석의 품에 안기며 비로소 빛났다. ‘열차 시간 다가올 때’를 기점으로 그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아르페지오 주법에서 스트로크 주법으로 슬며시 바꿨다. 덕분에 기차를 기준으로 정적인 시간과 동적인 시간, 고향과 군대, 익숙함과 낯섦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하강 멜로디로 스러지던 첫 하모니카 연주와 다르게, 두 번째 하모니카 연주에서 마지막 음을 달리 연주하여, (‘젊은 날의 꿈이여’의 멜로디에 깃든) 치미는 그리움을 표현한 대목도 탁월하다. 적어도 이 앨범에서 김광석의 편곡 실력은 조동익의 편곡 실력에 버금간다.
이 앨범의 대부분을 채운 곡은 동물원 때부터 그가 부른 곡과 그의 지난번 두 앨범(그의 3집은 이 앨범이 발매되고 7개월 뒤에 나왔다.)에 실렸던 곡이었다. 솔로 1집에서 다섯 곡을, 솔로 2집에서 네 곡을 가져온 그는 동물원 시절에 자신이 솔로로 부른 두 곡(과 동료들과 함께 부른 「말하지 못한 내사랑」)을 가져왔다.
이 곡들 또한 이 앨범에서 더욱 빛났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인트로를 채운 조동익의 플랫리스 베이스 연주와 간주와 후주를 장식하는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는 능숙한 곡 해석을 바탕 삼아 (김광석의 능숙한 기량에 적합한) 세련미 넘치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날들」은 신디사이저를 최대한 빼고 피아노로만 건반 연주를 담당한 조동익의 편곡으로 인해 김광석의 목소리가 보다 날카로워질 수 있었다. (김광석의 솔로 데뷔 시절부터 수없이 협력한) 김형석은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보다 미니멀하게 편곡하며, 김광석의 보컬에 포커스를 맞췄다.
자기 곡과 남의 곡을 구별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소화한 이 앨범은 그렇게 세상의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고민한 흔적마저 생생하게 남은 이 앨범은 그의 치열했던 음악 인생을 뚜렷하게 증언했다. 김광석은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아티스트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