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46-55-0
이 앨범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흐뭇하다. 「고독한 이에게」을 채운 절묘한 톤의 기타 솔로 연주와 「슬픈 사랑」의 속주를 오가는 이두헌의 기타 연주 솜씨(그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에서 좋은 보컬 실력을 드러냈다.), 「새벽기차」의 감각적인 인트로와 「오늘은 정말」의 독특한 리듬과 음색을 동시에 책임졌던 최태완의 건반 연주 솜씨, 「작은 기쁨」의 중심을 정말이지 꽉 붙드는(실제 연주자) 조원익의 베이스 연주 실력, 곡에 맞는 드러밍을 구사하는( 팝 드러머의 본질에 충실한) 박경영의 드럼 연주. 「새벽 기차」의 감성과 「고독한 이에게」의 ‘기교’를 모두 곧잘 소화하는 (멤버들의 준수한 코러스 실력을 바탕삼은) 임형순의 보컬.
이 앨범에서 이들이 구현한 사운드는 아마추어리즘 하나로 앨범을 꾸렸던 여타 캠퍼스 출신의 밴드 사운드와 일정 부분 선을 긋는다. 무작정 악기로 연주하다 곡을 뚝딱 만드는 주먹구구식 프로세스 또한 이들은 거치지 않았다. 해당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들어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주를 이들은 꽤나 감각적으로 소화했기 때문이었다. 글리산도 주법을 사용하면서도 음 하나하나를 명료하게 연주하는 최태완의 피아노 연주나, 「오늘은 정말」에 나오는 이두헌의 트윈기타 연주, 「슬픈 사랑」에서 안정적인 필인 주법을 (탐탐 드럼 연주와 더불어) 구사하는 박경영의 드럼 연주는, 감성만으로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는 재기로 가득하다.
이 앨범의 대중적인 ‘히트’를 이끈 쌍두마차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과 「새벽기차」였고, 실제로도 이 두 곡은 (앨범 제작사 관계자가 흔히 말하는) 대중에게 ‘어필’ 하기 위해 쓴 곡이었지만, 이들의 준수한 연주 실력은 이 두 곡에도 비교적 섬세한 미감을 입혔다. 「새벽기차」의 애절한 감정은, 멤버들의 세련된 손길이 닿으면서, 스산한 뉘앙스를 입었고,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멤버들의 세밀한 연주로 인해 곡의 뭉클함이 더욱 강해졌다. 이 앨범 특유의 호소력을 이들은 직접 일궜다.
(몹시 뻔한 표현이지만,) 20대만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2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절제력이 있는 실력이 이 앨범 안에 모두 깃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러한 ‘모순’ 덕분에 이 앨범이 그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젊은이란 결국 ‘아이는 아닌 어른’과 ‘어른이라기엔 지나치게 풋풋한 아이’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이니까.
이들은 당대의 젊은이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춥고 애매한 자리에 따듯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 앨범은 너무 늦게 당도한 사람에게 추억을, 너무 이르게 당도한 사람에게 낭만을 선사했다. 대중은 기존 가요와도 다르고 캠퍼스 록과도 일정 부분 선을 그은 이들의 곡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이 앨범이 당대에 이룩한 성과는 뮤지션과 대중이 더불어 이룩한 결과였던 셈이다.
시대와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그 시대에 정확히 안겼던 이 앨범은 그렇게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감정으로 남았다. 이들은 곧 이 앨범이 자리한 역사(驛舍)를 떠났지만, 이 앨범만큼은 이들이 지나간 철로 옆에 지금도 서있다. 적당히 빗물을 맞고, 이끼가 끼고, 풍화를 거듭해도, 글씨의 획이 짙게 살아있는 기념비처럼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