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38-44-0
이 앨범은 분명히 1984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의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서 이 음반의 ‘유통’까지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들’이 1983년에 내건 ‘학원 자율화’를 비롯한 여러 ‘기만적인’ 유화정책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또 하나의 ‘지하 앨범’으로만 남았으리라. (물론 그 정책을 ‘해방’이라 믿은 운동권 대학생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또한 이 앨범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지 않았다. 서울대(‘메아리’), 이화여대(‘한소리’), 고려대(‘노래얼’) 대학생 노래모임 출신의 사람들이 조직한 ‘새벽’이라는 ‘노래운동’ 모임이 이 앨범을 만들었다. 이 앨범을 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이 (옴니버스 성격의) 앨범에 붙은 제목에 불과했다.(다시 말해 ‘새벽’이 만든 첫 합법 앨범의 제목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이었던 셈이다.) 이 앨범이 (1987년에 만든) 2집과 함께 1987년에 비로소 풀렸을 때, 이들은 고심 끝에 자신들의 대외활동명을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결정했다. 이 앨범의 제목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이들의 2집에 이르러 이들의 팀명으로 쓰였다.
김민기는 이 앨범의 실질적인 제안자이자 책임자였다. 그는 자신의 사무소에 둥지를 튼 ‘새벽’에게 이 앨범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조심스레 건넸다. ‘새벽’은 거기에 흔쾌히 응했다. 이들은 이 앨범의 합법적인 발매를 목표로 삼았기에,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앨범의 LP에 든 건전가요와, 온순한 인상의 수록곡(이 앨범의 「그루터기」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를 고쳤다.)은 이들이 감내했던 뼈아픈 고통을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김민기의 내레이션과 더불어 국악기를 동원한 이들의 편곡 솜씨,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에서 일요일의 빛과 그늘을 넉넉히 담아내는 이들의 가창, 박미선이 부른 「갈 수 없는 고향」의 호소력, 「그루터기」의 장대한 합창과 「바람 씽씽」의 파릇파릇한 가창을 훌륭히 소화하는 이들의 음악적 역량에 이르기까지. 시대는 이 앨범의 곡에 은유의 족쇄를 채웠지만, 이들의 ‘소박’한 표현은, 이 ‘새싹’이 뿌리내린 곳이 바로 이 땅이라는 점만큼은 부정하지 않았기에, 대중에게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게다가 은밀히 말하는 방식이 더 깊이 말하는 방식이라는 걸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수많은 한계를 지닌) 이 앨범이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주 언급한다. (조경옥이 작곡한 것으로 초판 LP에 적혀있지만 실은 문승현이 작곡한) 「바다여 바다여」는 울고 있는 ‘당신’ 곁에 없는 자신을 노래했으며, 「갈 수 없는 고향」은 고향에 갈 수 없는 자신을 노래했다. 「바람 씽씽」은 굳센 나무로 갈 수 없는 자신을, 봄을 찾는 의지로 바꿨다.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든 「기도」는 이들이 만든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와 더불어 이들의 염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은밀하게 전달했다. 오갈 데 없이 가로막힌 현실을 그러모아 삶과 신앙(특정 종교의 것이 아닌)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의 의지가 은유의 숲을 헤매는 데 그친 이 앨범에서도 파르스름하게나마 생기를 잃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돌던 소위 ‘건전가요’보다 이 앨범에 실린 곡이 차라리 훨씬 더 건강하다는 점을 구태여 길게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