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45-41-0
이승열과 방준석의 음악적 개성은 적어도 이 앨범에선 구분할 수 없다. 이들이 이 앨범에 들어간 대부분의 곡을 미국에서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리드 보컬의 차이 정도가 이 앨범에서 이들의 음악적 개성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리라.
첫 곡인 「Nothing's Good Enough」부터 이 앨범이 어떤 앨범인지 곧장 드러난다. 기타 사운드에 기타 사운드에 기타 사운드에 기타 사운드를 얹은 편곡, 이 거대한 ‘덩어리’ 속에서 흐르는 듯한 보컬, 드럼 머신 특유의 (비트를 강조한) 인공적인 질감에 이르기까지.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가 미처 구현하지 못한 질감의 사운드를 이 앨범은 거침없이 내뿜는다.
「세상 저편에 선 너」의 간주를 채우는 이펙터 걸린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연주는 클린 톤의 리듬 기타 연주를 ‘세련된 테크닉’으로 여겼던 시대에, 갑작스레 도래한 낯선 기법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결국 (팀명에도 있는) 블루스와 (R.E.M. 의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얼터너티브 록으로 흘러들어 가지만, 이 앨범의 음악은 ‘목적지’에 방점이 찍혀있지 않다. 감정의 결을 사운드로 구현한 (사뭇 이성적인) 편곡을 택한 이들은 이 앨범을 다양한 기타 사운드로 물들였다. 이들이 만든 곡 또한 이 ‘범람’하는 물결 덕분에 더욱 독특하게 들린다. 이 곡은 그나마 반복적인 곡 구조를 지녔지만, 이승열의 보컬은 가면 갈수록 더 확실한 벨팅을 구사하며 곡의 질감을 더욱 강조했다. 어제의 세상은 반복을 거듭하지만,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는 이들의 은유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이 만든 사운드가 이들의 감정을 더욱 일렁이게 할 뿐이다.
이 기타 사운드의 질감을 드럼의 ‘강한’ 사운드가 해쳤다면, 이 앨범의 ‘황홀한 범람’은 순식간에 매력을 잃었으리라. 이들은 오로지 비트 만을 강조한 드럼 머신의 드럼 사운드로 이 앨범의 드럼 파트를 (몇 곡을 제외하고) 거의 다 채웠다. 김병찬의 베이스 연주와, 키보드 연주가 은은하게 얽힌 「꽃」 또한 그저 비트만을 강조한 드럼 머신 사운드가 곡의 (상대적으로) 거친 질감을 약간만 드러낸다. 「흘러가는 시간.. 잊혀지는 기억들」이나 「고백」과 같은 곡에서 들리는 드럼 머신 사운드 또한 곡에 알맞은 약간의 비트를 사운드에 보탤 따름이다.
애당초 이 앨범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청자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이 앨범을 듣는 청자가 가랑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서서히 옷이 젖듯이 사랑과 그리움과 고독 속에 천천히 젖어가기를 바랐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이 앨범의 사랑이 (감정적인) 풍경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사운드로 끈질기게 구현했다. (서툰 한국어 가사로 인해 매우 ‘겸손’해진,) 「패션시대」와 「싫어」에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접한 고독의 풍경들을 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끈질긴 의지 덕분에 이 앨범은 ‘찬란한 실패작’이라는 희귀한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들이 이 앨범의 가사를 전부 영어로 바꿔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자신들의 고독과 사랑을 청자에게 서툴게나마 전부 다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고독과 사랑은 적어도 이들에겐 별개가 아니었을 테니까. 심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들의 고독은 여전히 짙고 푸르다. 휴... 얼마나 지독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