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노래전시회』

PART 9. 22-72-76

by GIMIN

나는 이 앨범에 든 「제발」을 (『들국화Ⅱ』[1986]의 「제발」보다) 조금 더 좋아한다. 전인권이 내지르는 「제발」의 절규도 훌륭하지만, 최성원의 나긋나긋한 미성이 곡 전체에 벤 ‘지친 목소리’를 표현하는 이 앨범의 「제발」이 내게 좀 더 와닿는다. 수록곡 간의 격차도 있고, 한계도 분명한 데다가, 열악한 사운드를 지녔음에도 이 앨범은 여전히 들을 때마다 싱그럽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의 피아노 연주 인트로 뒤에 등장하는 이광조의 (팔세토 창법을 구사한) 보컬은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가수가 구사했지만) 팔세토 창법이 고유하게 지닌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강인원이 부른 「매일 그대와」는 (이 곡의 작곡가인) 최성원이 먼저 『이영재 이승희 최성원』(1980)에서 직접 부른 버전보다 미려함 면에선 앞섰다. (아직 함춘호가 합류하지 않은 하덕규 솔로 체제의)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에게」는 수더분한 맛이 살아있고, (이 앨범을 발매할 당시엔 조동익 솔로 체제였던) ‘어떤날’이 부른 「너무 아쉬워하지마」는 수굿한 맛이 살아있다.


양병집이 호방하게 부른 「이 세상 사랑이」는 (당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음악을 좋아했던) 조동익이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해서 만든 곡이었다. 박주연의 보컬이 훌륭한 「그댄 왠지 달라요」는 최성원이 작곡한 (당시 기준에서) 새로운 감각의 발라드였다. 이 두 곡 또한 새로운 ‘성향’을 띤 노래를 들려준다는 이 앨범의 목적에 퍽 충실하다. 「이 세상 사랑이」의 넓은 스케일은 전대미문이었고, 「그댄 왠지 달라요」를 부르는 박주연의 보컬은 당대에 흔치 않았던 방식으로 해당 곡에 접근한 보컬이었으니까.


이 컴필레이션 음반의 성격을 ‘전시회’로 규정한 이 앨범은 사실 최성원이 모든 걸 혼자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이 앨범에 들어간 대부분의 곡을 만들었으며, 함께 할 사람들을 직접 불러 모았다. 조동익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면서 처음으로 레코딩 세션을 경험했다. 훗날 최성원과 더불어 들국화의 건반악기 담당 멤버(이자 들국화 사운드의 핵심을 담당한) 허성욱 또한 이 앨범에서 최성원과 재회했다.


이 앨범 이후로 하덕규는 (예전에 같이 합을 맞춘 바가 있었던) 함춘호와 더불어 ‘시인과 촌장’을 다시 세웠다. 말 그대로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전인권은 (예전에 잠시 헤어졌던) 최성원과 허성욱과 만나 본격적으로 팀을 이루며 ‘들국화’를 결성했다. 조동익은 ‘어떤날’을 듀오로 재편했다. 박주연은 솔로 앨범을 발매하는 한편, 이름 높은 작사가로 거듭나며, 자신의 영리한 음악적 센스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양병집은 길고 긴 음악 생활 속에서도 끝끝내 혜안을 잃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었다. 이 앨범은 전시회의 성격도 갖춘 앨범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정거장이나, 교차로 노릇도 한 셈이었다.


『따로 또 같이 Ⅱ』(1984)와 더불어 새로운 음악의 돛을 올렸던 이 앨범은 동틀 녘 직전의 으스스한 기운까지도 그대로 머금은 앨범이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대부분 해당 뮤지션의 정규 앨범에서 더 나은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파릇파릇한 가능성이 열악한 사운드를 뚫고 솟는 ‘기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오로지 이 앨범에서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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