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58-83-63
통속적인 소재를 많이 다뤘다. 그러나 통속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앨범이 말하는 외로움(과 사랑)에 물기가 없기 때문이다. 명백한 사랑 노래인 「외로운 밤에 노래를」*에서도 이정선은 ‘사랑 노래를 불러달라’ 간원했다. ‘모든 게 나를 흔든다’고 고백하지만, 기실 그는 넘어갈 생각도 없는 듯하다. 달뜬 감정과 과묵한 어조가 묘한 모습으로 이 앨범에 동거한다.
사람들이 「섬소년」(1975)이나 「산사람」(1978)을 비롯한 ‘자연주의’ 포크로만 그의 음악을 ‘재단’했을 때, 그는 기타의 연주음이 어디서 어떻게 울리는 지까지도 세세히 골몰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블루스’를 ‘뽕 블루스’라고 단언했던 역량을 갖춘 그는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초창기 작품이자 금지곡인) 「거리」(1975)나, 「사랑의 약속」(1976), 「해송」(1980) 같은 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에 그가 만든 곡에서도 그의 (반항 섞인) ‘블루지’는 줄곧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 해외에서 갔다 온 그는 자신의 ‘블루지’를 이 앨범의 곡에 보다 솔직하게 투영했다. 이 앨범은 차라리 그가 자신의 음악을 재정립한 앨범이라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그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정말이지 다양한) 기타 연주를 이 앨범 안에 모두 녹였다. (래그타임[Ragtime]의 스트라이드[Stride] 피아노 연주를 기타 연주로 옮긴 듯한) 「우연히」서부터 이 앨범은 핑거스타일[Fingerstyle]의 기타 연주를 강조했다. 이정선의 보컬 또한 전작과 분명히 다른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연주나 보컬 모두) 다분히 날 것을 표출하겠는 의지가 강했다. 이 앨범에서 그의 목소리는 고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분히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토로에 가깝다. 전작의 음악적인 성격을 닮은 「행복한 아침」이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또한 이정선의 이런 ‘토로’ 덕분에 더욱 독특한 질감의 곡으로 거듭났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이정선이 만든 가장 직관적인 사운드로 가득하다.
이 앨범의 LP A면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곡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곡에서도 그가 연주한 (때로는 과감한) 기타 연주는 선명하게 들린다. 당장 그의 전작인 『이정선 6½』(1981)을 듣다가 이 앨범의 곡을 들어도 이 앨범의 모든 기타 연주 사운드가 더욱 뚜렷하게 들린다.
이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거의 모든 곡에 들어간 B면의 수록곡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의 솔로 연주와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 기타 연주로 B면 수록곡의 기타 사운드를 가득 채웠다. 「건널 수 없는 강」이나 (흔히 바닷가‘의’ 선들로 잘못 표기하는) 「바닷가에 선들」에서 그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또렷하면서도 그윽하게 들린다. (기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그의 강한 리듬 기타 연주가 굳건히 떠받쳤다.)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변화와 그의 음악적 화두, 그의 (능동적인) 대중적인 어프로치가 ‘30대’의 외로움 속에서 절묘하게 합일하여 제 자리를 찾은 앨범이었다. 때문에 이 앨범에서 그가 토로한 ‘외로움’에 절실히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 앨범은 청자의 가슴속에 ‘불’을 댕기지 못한다. 나는 30대임에도 이 앨범이 좋은 음악이라는 점만을 겨우 깨달았다. (물론 이 앨범이 나올 당시의 30대는 지금의 30대와 분명히 다르지만.) 이 리뷰는 언젠가 또 갱신될 것이다.
*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그와 하덕규가 나란히 작곡가 항목에 올라간 곡이다. 이 곡을 만들 당시에 이 곡의 멜로디와 하덕규의 곡 멜로디와 유사하다는 걸 안 그가 이를 하덕규에게 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