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PART 9. 19-31-54

by GIMIN

이 앨범의 아픔은 뼛속까지 스민다. 「푸른 애벌레의 꿈」을 ‘간신히’ 노래하는 하덕규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괴로움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가시나무」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 또한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하다. (스타카토 주법을 주로 구사하는) 현악 연주와 플루트 연주,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한데 얽힌 슬픔의 무게를 겨우 비집고 나온 「새벽」의 보컬 멜로디는 들을 때마다 높은 벽에 바라보는 충혈된 두 눈이 떠오른다. 이 앨범의 말은 (마치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면 이뤄지리라 믿듯이,) 끊임없이 ‘좋은 나라’를 이야기했지만, 「좋은 나라」의 ‘좋은 나라’는 끝내 우화와 가정법의 숲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의 바람이 느끼는 쓸쓸함을 메이저 코드의 반주로 ‘황급히’ 덮는 대목은 (이 곡이 일종의 우화임에도)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때」의 (가정법이 섞인) 신실함은 (불안정한 곡 구조의) 「새털구름」 같은 희망에서 겨우 건진 하덕규의 ‘믿음’이었으리라.


조동익과 하덕규는 이 앨범의 수록곡을 편곡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이들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지닌) 이 앨범의 모든 곡마다 깃든 고통을 편곡에 최대한 반영했다. 「푸른 애벌레의 꿈」의 후주 직전, 탈바꿈하는 애벌레의 고통 섞인 완전변태(完全變態)를 김영석의 (볼륨이 큰) 드럼 연타 연주로 표현한 대목은 사뭇 감동적으로 들린다. (「때」의 브러시 드럼 연주와, 「좋은 나라」의 비트를 차분한 탐탐 드럼 필인과 림샷 주법만으로 살린 김영석의 드럼 연주 또한 이 앨범의 ‘적확한’ 사운드를 견인했다.) 「나무」의 인트로에서 기타 연주가 피아노 꾸밈음 연주와 조응하는 대목은 퍽 신선하게 들린다.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의 (신디사이저 연주로 문을 열고 훌륭한 텐션의 베이스 연주가 곡의 뉘앙스를 지그시 받친) 리드미컬한 인트로는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바람 부는 모습을 셈여림을 달리 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로 치환한 솜씨조차도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새벽」에서 스타카토 주법의 현악 연주가 시시각각 몸을 옥죄는 느낌을 청자는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새날」을 (셈여림을 섬세하게 살린) 피아노 배킹 연주와 (약간의 보컬 더빙이 들어간) 하덕규의 목소리만으로 편곡하여 곡의 서늘한 처연함을 강조한 대목은 (너무 과한 공간감을 불어넣지 않은 레코딩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시리게 들린다. 「숲」의 마지막 가사를 노래하는 하덕규의 보컬에서 갑작스레 리버브가 빠진 대목 또한 이 앨범의 ‘모놀로그’에 부합하는 (‘ㅅ’의 서늘한 음가가 거진 다 표백된 듯한) 하덕규의 앙상한 목소리를 청자에게 보다 즉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앨범 수록곡의 가사는 유달리 겹치는 단어가 많다. 이 앨범은 끊임없이 ‘나무’, ‘구름’, ‘새’, ‘벽’과 같은 단어가 등장했다. 유달리 후주에 많은 말이 들어간 앨범 후반부 수록곡에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를 ‘동어반복’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 앨범이 함유한 음악과 이 앨범의 말이 워낙 훌륭하게 조응하기 때문이었다. 곡 구성이 생각보다 복잡한(혹은 온전치 않은) 이 앨범의 수록곡에게 이 ‘단어’들은 일종의 고정핀이 아니었을까.


이 앨범은 ‘고백’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하덕규의 떨리는 손길까지도 제대로 깃들었다. 그는 혼돈이자, 번민이자, 정겨운 어둠인 이 ‘숲’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이 앨범에 나오는 ‘좋은 나라의 소식’은 아직도 오지 않건만, 이 앨범에서 그가 운 자국은 아직도 선명하다. 결코 좁아질 수 없는 그 간극 사이에서, 이 앨범은 아직도 앓는다.



107.jpg


이전 15화『趙容弼(조용필)』(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