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容弼(조용필)』(1980)

PART 9. 41-29-55

by GIMIN

이 앨범은 LP의 곡 순서로 듣는 게 가장 좋다. A면이 조용필의 엘레지(Elegy)를 모두 담았다면, B면은 다양한 장르에 투영된 조용필의 절창(絶唱)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각 LP 한 면의 두 번째 트랙에 자리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한오백년」은 조용필의 목소리에 깃든 서러움을 ‘이 땅 위에’ 수놓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이 앨범에서 (조용필의 ‘필링’에 조응하는) 세련된 신디사이저 연주가 깃든 「단발머리」는 (조용필의 절창[絶唱]에 조응하는) 신디사이저 연주가 깃든 「한오백년」과 더불어 들을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들린다.


물론 그 이전에도 조용필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유달리 ‘돌아선다[혹은, ‘돌아온다’]’는 표현이 많은) 이 앨범에서 그는 정말이지 목숨을 걸고 노래했다. 「창밖의 여자」의 엘레지(Elegy) 어린 훅과, 「한오백년」의 체념 가득한 가락을 처절하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청자의 가슴을 그냥 관통했다. 그가 표현한 비극은 정말 모진 삶 속의 비극처럼 들렸고, 그가 부르는 민요는 정말 백년 묵은 한을 품은 듯이 들렸다. 70년대의 가요를 통과한 이들의 귀에 순식간에 꽂힌 이 절창[絶唱]은 전례가 없었던 선명함과 실감을 함유했다. 당시의 대중은 이 앨범의 음악에 정말이지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다.


메이저 코드의 디스코 곡인 「단발머리」에서도 그는 세월에 대한 원망을 한 줌 남기며, 곡에 어울리는 그림자를 보탰다. 그는 또한 「대전 블루스」와 같은 ‘스탠다드’ 가요에도 자신의 처절한 목소리를 일관적으로 수놓았다. 이러한 일관성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리듬 구조를 약간 공유하는) 「잊혀진 사랑」에서 (긴 호흡의) 「돌아오지 않는 강」, (조용필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이 감동적인) 「정」, 조용필이 곡의 비감(悲感)을 훌륭히 표현한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로 이어졌다. 때문에 이 앨범의 LP B면 후반부 곡들은 일종의 ‘엘레지 메들리’처럼 들린다. (이 곡들 모두 느린 리듬에 얹힌 신디사이저 연주를 바탕 삼는 음악적 특징을 공유했다.)


이 앨범의 ‘연주’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다. (특히 「한오백년」이나 「너무 짧아요」를 훌륭하게 소화한) 이 앨범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조용필이 일군 탁성(濁聲)과 곡에 긴밀한 어프로치를 절묘하게 서포트하는 연주를 이 앨범의 사운드에 부여했다. 「단발머리」에서 하이햇 오픈과 하이햇 클로즈 주법을 절묘하게 구사한 이 앨범의 드럼 연주는 수록곡마다 다른 느낌의 드럼을 연주하며, 이 앨범의 다양한 수록곡에 꼭 들어맞는 연주를 구사했다. 「너무 짧아요」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같은 빠른 곡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나 「정」과 같은 느린 곡에서도 베이스 특유의 표현력이 제대로 깃든 연주를 한 이 앨범의 베이스 세션은 자칫 지나치게 가벼웠을 이 앨범의 ‘무드’를 적확하게 다잡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등장하는 (소위 ‘트로트 고고’ 특유의) 리듬 기타 세션 또한 곡의 비감을 적확하게 살린 탁월한 센스를 발휘했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또한 생각보다 전통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앨범은 조용필이 처음 내놓은 자신의 ‘현존재’처럼 들린다. 훗날 그가 추구한 ‘생명’에 대한 실존적인 음악적 탐구는 이 앨범의 ‘모진 목숨’에서 온 게 아니었을까. ‘음악과 뮤지션은 별개’라는 의견은 적어도 이 앨범에선 통하지 않는다. 이 앨범은 조용필의 음악과 조용필을 구분할 수 없다. 이 앨범에서 마침내 조용필은 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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