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노래모음』

PART 9. 24-43-49

by GIMIN

이 앨범 안에 든 비범한 긴장감은 그 까닭을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가을이니까 이들의 음악이 더 잘 팔리겠다’는 제작자의 막연한 생각. 1집 앨범 발매를 전후하여 가진 라이브 공연에서 이들이 얻었던 자신감.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감히 (16트랙 레코딩이 보편화된 시대에) 2트랙 레코딩 방식을 채택했던 (물론 몇 곡은 멀티 녹음을 진행했던) 이들의 배짱. 전작에선 쓰지 못했던 리버브를 비로소 마음껏 사용한 이들의 ‘소박한’ 여유. 스쳐 지나간 것과 떠나보낸 것에 대한 이들의 여전한 관심. 더불어 늘어난 이들의 회의와 한숨과 불편함. 이 모든 까닭이 이 앨범의 비범함을 이끌어냈다. (노래와 사운드에 훌륭하게 조응한 이 앨범의 ‘말’ 또한 이 앨범이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와 아예 무관계하지 않다.)


전작에서 훌륭한 곡을 여럿 만든 김창기와 유준열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이 만든 곡이 기실 이 앨범의 ‘방향’을 다잡았다.) 그러나 나는 전작에서 「어느 하루」나 「여기서 우리」를 만든 박경찬이 이 앨범에서 「이별할 때」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출중한 송라이터였지만, 전작에선 피아노 세션으로만 참여한 박기영 또한 이 앨범에 「잘가」와 「별빛 가득한 밤에」 같은 좋은 곡을 보탰다. (철저하게 기념 앤솔로지 음반의 성격을 끝까지 가져갔던) 전작에서 감상주의적인 낭만성과 서투른 엄숙성을 덜어낸 듯 한 이 앨범의 곡은 이 앨범의 사운드를 한층 더 밀도 높게 만드는 중추로 작용했다.


유준열의 곡과 김창기의 곡은 이 앨범에서 음악적인 차이가 더욱 두드러졌다. 스트로크 주법의 기타 연주를 바탕삼은 리듬 위주의 편곡이 (작곡가인 유준열 본인이 친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흥미롭게 들리는 「새장 속의 친구」는 김광석의 보컬로 인해 어느새 다른 곳으로 훌쩍 초월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에 들리는 김창기의 목소리에서 솟구치는 다이내믹한 연주는, 고즈넉한 「동물원」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곡의 어딘가에 있던 어떤 심연을 의도치 않게 열어젖힌 듯한) 다이내믹한 연주와 더불어, (이 앨범에서 유달리 ‘솟구치는’) 김창기 노래의 아찔한 감수성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는 또한 그가 만든 가장 위태로운 걸작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 곡의 보컬 멜로디와 뛰어나게 조응하는 언어를 곡 안에 수놓았다.


이러한 집중력과 긴장감 덕분에 팀의 원래 취지는 살짝 바래졌지만, 이 앨범은 그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 앨범의 노래는 어느새 동물원이라는 팀 자체를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후반부의 방황을 「명륜동」의 허밍으로 마무리하는 이 앨범 이후로 동물원은 많이 변화했다. 김광석과 이우성은 이 앨범을 발매 한 이후에, 프로 뮤지션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동물원을 나왔다. 최형규 또한 동물원을 나왔다. 직장인의 삶과 뮤지션의 삶을 계속 병행한 이들은 이 앨범 이후에도 좋은 앨범을 많이 만들었다.


이 일곱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80년대를 졸업하며) 모여 만든 이 앨범은 흔한 소리조차도 무척 특별하게 들린다. 얼굴 주위에 깃든 비누 냄새까지도 뚜렷하게 맡을 수 있는 이 앨범의 음악은 여전히 이 앨범을 둘러싼 추억보다 힘이 세다. 삶과 노래 중에서 대부분 (혹은 어쩔 수 없이) 삶을 택했던 이들은 적어도 이 앨범에서 끝내 노래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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