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1982)

PART 9. 11-28-47

by GIMIN

이 앨범을 만든 시간은 채 20시간이 되지 않는다. 믹싱 시간을 빼면 이 앨범의 녹음 시간은 10시간 남짓이었다. 보컬 파트는 따로 날을 잡아 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녹음 했다. 따라서 이 앨범의 연주 녹음 시간은 고작 예닐곱 시간에 불과했다. 마침 밴드 멤버가 2명에 불과했기에 이들은 오버 더빙 기술을 사용했다. 먼저 원 테이크로 최수일의 드럼 연주와 김수철의 베이스 연주가 녹음되었다. 김수철은 이 녹음된 연주를 들으며 (오버 더빙 레코딩으로) 리듬 기타 연주를 입히고, 리드 기타 연주를 입히고, (때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도 입히고,) 키보드 연주를 입혔다. 이 앨범의 연주 녹음은 이 과정을 8번 되풀이했다. (한 곡에 대한 연주 녹음을 완벽하게 마치고 나서야 이들은 다음 곡의 연주를 녹음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국내 레코딩 스튜디오가 갓 도입한 16채널 레코딩 기술을 이 앨범을 녹음할 때 적용하기 위해서, (온갖 현실적인 문제에 골머리를 앓았던) 김수철은 이 살인적인 제작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때마침 이들이 녹음하는 와중에 스튜디오에 놀러 와서(!) 이들의 노래를 주목했던 일본인 엔지니어 키타가와 마사토(北川正人)가 이 앨범을 믹싱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자신의 의도에 맞게 모든 곡을 믹싱하는 이 엔지니어의 손길을 보며 김수철은 얼마나 기뻐했을지.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거쳤는데도, 이 앨범의 사운드는 조화롭고 또한 강력하다. (베이스 연주와 키보드 연주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별리」를 부르는 김수철의 목소리는 민요의 정수에 선명히 맞닿아있었고,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김수철의 기타 연주는 한 음 한 음 정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늘 어떤 정수를 강력한 직관으로(과 현대적인 세련미로) 꿰뚫는 음악이었음을 이 곡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천명했다. 호쾌한 기타 연주가 블루스 기타 연주로 넘어가는(또한 강력한 베이스 기타 연주가 함께 들리는) 「새야」나, 기타 피킹 애드리브 연주의 향연인 「알면서도」의 기타 연주는, 아무리 레코딩 상태나 믹싱 상태가 훌륭하더라도, 원래의 ‘소스’가 훌륭하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청자에게 확실히 일깨워줬다. 그의 기타 연주보다 그의 베이스 연주와 키보드 연주가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연주곡 「어둠의 세계」는 기타 히어로의 이미지에 가려졌던 김수철의 밀도 높은 음악적 역량을 (최수일의 충직한 드러밍과 더불어) 증명했다.


이 앨범의 기타 연주(와 사운드)가 너무나 압도적인 탓에, 이 앨범을 하드록 앨범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실 이 앨범은 ‘소울’ 또한 아울렀다. 「어쩌면 좋아」는 김수철 ‘소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트랙이며, (기타 솔로 연주가 인트로와 후주를 수놓은) 「행복」과, (김수철의 베이스 연주가 온전히 들어간) 「외로움」과 같은 곡은 김수철이 소울 또한 잘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을 증명했다. (앨범 첫 곡의 「별리」는 바로 이런 지점을 생각할 때 비로소 앨범 전체와 이어진다.) 그는 자신이 훌륭한 사운드 메이커라는 점과 훌륭한 작곡가라는 점을 이 앨범의 음악으로 한꺼번에 증명했다.


(앨범의 사운드에 맞추어 리노베이션한) 이 앨범의 「일곱색깔 무지개」에서 그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기타 연주를 마음껏 구사했다. 이 ‘자유로운 연주’가 김수철의 생존 투쟁 속에서 피어났다는 점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눈물겹다. 경이로운 사운드와 출중한 곡으로 시대를 초월한 이 앨범은 이 ‘작은’ 거인이 낸 가장 ‘큰’ 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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