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94-53-44
이 앨범은 노래모임 ‘새벽’이 자신들의 외부 활동 명을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결정했던 시기에 나왔다. 이들은 민중에게 자신들의 저항을 널리 알리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민중과 어깨동무하기 위해) 투쟁 중에 만든 이들의 노래를 선곡해서 이 앨범에 담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상당수는 이들이 쓴 창작 노래극의 수록곡이었다.) 신디사이저 솔로 연주(와 베이스 연주를) 제외하고 악기 솔로 연주가 거의 들리지 않는 이 앨범의 편곡은 이 앨범의 수록곡이 널리 퍼져나기를 바랐던 이들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다 함께 따라 부르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 앨범의 노래를 엄숙하게 합창했다.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 충실했다. 이 앨범이 검열과 폭압에 의해 희생된 모든 말과 감정, 이디엄을 온전히 담으려 했던 이유 또한 이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은유’에 머물렀지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소나무가 지닌 절개에서, 땅과 산하를 지나 (「잠들지 않는 남도」의) 제주도에 이르는 이 앨범의 ‘흐름’은 이들의 저항이 단순히 ‘일탈’이나 ‘방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 땅을 거쳐 간, 폭압의 잔혹한 손에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이들을 대신하여 싸우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사계」의 느린 훅에 등장하는 파리한 목소리에도, 「저 평등의 땅에」를 또렷하고 힘차게 부르는 권진원의 목소리에도 온 마음을 담았다. 안치환, 문승현, (「광야에서」를 쓴) 문대현, (「저 평등의 땅에」를 쓴) 류형수의 작곡 능력은 바로 이러한 ‘목적’이라는 ‘맥락’을 먼저 이야기해야 비로소 온전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앨범이기에 앞서, 민중에게 건넨 더운 악수였다.
이 앨범은 또한 결과적으로 당시 한국의 대중 음악계와 민중 음악계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살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했다. (‘따로 또 같이’의 멤버였던) 나동민의 편곡과 프로듀싱은 이 앨범에 가득 한 투쟁의 목소리가 온전히 대중에게 들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동물원의 초창기 멤버이자 (소위 ‘운동권’의 유명한 건반주자이자, 안치환의 친구였던) 박기영은 이 앨범의 모든 건반 연주를 전담하여, 이 앨범의 사운드를 견고히 다졌다, 후일 동물원에 가입한 배영길은 (안치환과 더불어) 이 앨범의 기타 연주를 도맡았다. 훗날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약했던 조성오는 「이 산하에」와 같은 곡에 진중함을 뒷받침하는 베이스 연주를 포함하여, 이 앨범 수록곡의 모든 베이스 연주를 책임졌다. (나중에 김창기 밴드의 드러머로도 활약하는) 이형복은 훌륭한 드럼 연주로 이 앨범의 사운드에 굳센 뒷심을 부여했다. 「그날이 오면」에서 대북과 드럼을 섬세하게 번갈아 치는 그의 드럼 연주는 해당 곡에 음악적 악센트와 생동감을 부여했다. (이러한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시대에 대한 공감대가, 당시의 모든 사람에게 알음알음 퍼져있었다는 사실도 더불어 증명했다.)
이 앨범은 어느 순간 모든 ‘목적’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부르짖었다. 물론 이는 이들이 정확히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결국 이 ‘목적’은 (폭압의 손과, 엄숙주의의 손에) 이 앨범의 ‘음악’이 지닌 끈질긴 생명력으로 인해 끝내 '부패'하지 않았다. 한국 대중음악은 (억눌린 역사와 금지된 음악을 대신하여) 이 앨범을 만든 이들이 흘렸던 피눈물과 이 앨범이 만든 이들이 흘린 소금 땀을 먹고 자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민중을 위한 이들의 수고로운 ‘안간힘’을 들으며, 나는 지금 시대의 폭압적인 시스템이 양산하는 모든 ‘소음’을 물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