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사람들』

PART 9. 42-37-41

by GIMIN

어쩌면 이 앨범은 리드미컬한 사운드가 가요계를 뒤엎었던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80년대 한국 대중음악 ‘장인’들의 응답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음악의 이름을 처음 내걸고 만든 이 앨범의 크레디트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적혀있다. 정원영, 조동익, 김현철, 김광민은 각각 두 세곡씩을 전담하며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을 편곡했다. 정원영의 편곡이 보다 재즈에 충실한 사운드로 가꾸어졌다면, 김현철과 조동익은 보다 가요에 부합하는 편곡을 내세웠다. 김광민은 이 앨범에서 (앨범의 숨은 보석인)「색칠을 할까」 단 한 곡을 편곡했지만, 허은영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지는 재즈 피아노 연주도 직접 연주하는 식으로 적극 참여하며 이 곡을 앨범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유달리 구음(口音)과 구어체를 강조하는 이 앨범의 가사는 지금도 퍽 이채롭게 들린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을 만든 고찬용이 직접 쓴 가사는 그의 독특한 필치로 가득하다. 그와 신진이 협업해 쓴 「비닐 우산」이나 그가 가사를 쓴 「동물원」은 독특한 감수성과 재치가 두드러진다.


이 앨범에 참여한 수많은 드러머와, 조동익과 장기호를 비롯한 베이시스트, (훵크 기타의 장인인) 최이철과 손진태 같은 기타리스트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지닌 독특한 음악적 특성(주로 재즈로 수렴되는 수많은 코드 워크와 화음과 선법)을 십분 살리는 연주를 주로 구사했다. 「왜 늘......?」의 간주에 등장하는 최이철의 어쿠스틱 기타 솔로 연주(희한하게도 이 곡은 일렉트릭 기타가 리듬 기타 연주를 담당했다)는 필링이 꼭 ‘음량’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청자에게 명백히 알려줬다. 손진태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에서 구음(口音)과 고찬용의 보컬을 해치지 않은 채로 (와와 페달을 운용한) 훵크 기타를 연주하며 곡의 운치를 한껏 살렸다. 「무대위에」에서 장기호(박성식 또한 이 곡에 신디사이저로 참여했다)는 곡을 충분히 서포트하는 베이스 연주를 해당 곡에 수놓았다. 그는 또한 「무대위에 Reprise」의 (밴드 아침[Achim]의 멤버이기도 했던)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의 비브라폰(Vibraphone) 연주와 손진태의 기타 연주와 김광민의 피아노 연주가 번갈아 연주한 탑 라인을 베이스 연주로 충실히 서포트했다. 퍼커셔니스트 박영용 또한 「동그라미 네모 세모」에서 그의 출중한 퍼커션 연주 실력을 뽐냈다.


물론 이 앨범은 90년대 음악이 우리에게 들려준 목소리의 ‘전람회’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멤버와 세션이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하게’ 몰입했기에 이 앨범은 조화로운 사운드를 입었던 셈이었으니까. 이 앨범은 고찬용의 매력적인 (또한 좋은 의미로 까다로운) 곡을 멤버들의 훌륭한 보컬 하모니가 깃든 앨범이었다. 이들의 ‘자기소개’인 (이소라가 처음으로 직접 작사한) 「낯선 사람들」에서 백명석의 목소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소라의 (비음을 머금은) 나른한 목소리는 이 앨범의 음악적 성격과 감수성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는지를 즉각 청자에게 알려줬다. (이소라는 이 앨범에서 작사와 보컬에 참여했지만, 「왜 늘......?」이나, 「무대위에」와 같은 곡을 훌륭하게 전담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뚜렷하고 독창적인 목소리는 잊힐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뚝심 있는 사운드로 증명한 이 앨범은 ‘빛의 모자를 쓴 고래 꼬리’로 대표할 수 있는 독특한 감수성이 빛바래질 때까지 우리 곁에 머무르리라.


...글쎄,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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