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44-23-40
이 앨범에서 이들이 구축한 사운드는 데뷔 앨범의 ‘흐름’과 꽤나 달랐다. 이 앨범에 이르러 비로소 두 사람의 음악적인 개성이 본격적으로 차이를 드러났다. 물론 이는 전작의 상업적 실패 때문에 벌어졌다. 전작은 이들이 거의 모든 사운드를 꾸렸지만, 이 앨범은 이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송홍섭, 강기영, 김병찬과 같은 베테랑 베이시스트, 김민기, 김성태, 김욱과 같은 헤비메탈 밴드 출신의 드러머, 장경아와 같은 키보디스트가 이 앨범에 각 잡힌 라이브 연주(의 열기)를 빼곡히 심었다. 이 앨범은 또한 ‘그날’을 각각 오리지널 버전과 라이브 버전으로 만들었고, 「지울수 없는 너」를 두 개의 버전으로 따로 만들어, 각각 이 앨범의 첫 곡과 마지막 곡에 배치한 의욕도 부렸다.
최철의 곡에 방준석이 가사를 쓴 「지울수 없는 너」와, 이승열의 리듬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방준석의 곡 「나의 다음 숨결보다 더 아름다운 너를 원하고 있어」, 리듬 파트를 제외한 모든 연주를 방준석이 맡은 「어떻게」는 (친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복고적인 사운드로 채워졌다.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로 인트로를 여는 「언제나 내 곁에」는 (마지막에 깜짝 등장하는 비틀즈[The Beatles]의 「All you need is love」[1967]의 멜로디로 인해) 이들의 재치가 두드러졌다.
이승열이 만든 「없어」, 「La La La La Day」는 전작에 비해 훨씬 어색하지 않은 가사를 품고 있음에도 독특한 사운드와 곡 구조 덕분에 꽤나 파편적으로 들린다. 「세상 저편에 선 너」의 훅엔 (전작의 「세상 저편에 선 너」에는 없었던) 사이렌 소리가 새로 들어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기타 연주가 훌륭한 「그대영혼에」는 이승열이 후주에서 부른 (묘하게 이승열의 근작[近作]을 떠올리게 만드는) 허밍까지도 인상적으로 들렸다. 「U」는 이들이 추구한 블루스를 대변하는 듯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수 김장훈이 연주한) 블루스 하모니카 사운드와 오르간 연주(처럼 들리는 장경아의 신디사이저 연주) 사운드가 끊어질 듯 계속 이어졌다.
시간과 영원에 대한 이들의 ‘사유’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적극 활용했는데도) 이 앨범에 나타난 두 사람의 음악적 특징이 입체적으로 두드러지면서 아름답게 망가졌다. 「그대영혼에」 후반부의 허밍은 심연의 중심을 통과하지 못하고 파편화된 위로의 자장가처럼 들린다. 회색지대를 통과하는 상실과 외로움에 노래하는 (슬픔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의 노래는 이 앨범에 등장하는 ‘너’를 제법 입체적인 존재(차라리 맥거핀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이 앨범의 음악 속에서 두 사람은 가벼운 현기증을 앓는 듯이 들린다.
그러나 바로 이 음악이 이들의 ‘얼터너티브(모던) 록’이었다. 차라리 전형성이나 대중성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조롱)이자 토로처럼 들리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록’의 에너지를 사뭇 이지(理智)적인 방식으로 참신하게 담았다. 이 앨범은 결국 이들이 (장필순과 더불어) 당대에 가장 뛰어난 ‘모던록’의 이해자였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했다. 그러나 이 앨범 또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지독하게 개인적이고 지독하게 외로우며 지독하게 애원하고 지독하게 절규하는 이 앨범에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에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한 소수의 사람들이 기어이 이 앨범을 망각의 바다에서 구출했다. 이 앨범은 그제야 정당한 평가(와 선지적인 위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