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사인받는 것을 뿌듯하게 여긴 시기가 있었다. 김훈 작가의 사인을 받으면서 느낀 뿌듯함은 말로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내게 자기가 쓴 몽당연필을 건넸고, 나는 아직도 그 연필이 든 유리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사인을 받는다는 게 이럴 정도로 집착할 일인가 생각했다. 사인을 받을 때마다 떼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인간실격』에서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보냈다'라고 대뜸 쓴 요조의 고백서 첫 줄이 가슴께를 찌른다.
시간이 지나고, 유명인의 사인이나 쓰던 굿즈를 되파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의 사인을 얻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딴생각이 특기인 내 머리가 다른 기억을 불렀다. 아는 두 명의 시인 선생님이 있는데 한 분이 다른 분에게 준 친필 서명 시집을 나는 우리 동네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샀다. 두 분은 아직 내가 그 시집을 샀다는 사실도 아마 모를 테다. 사인과 더불어 친절한 감사인사 몇 마디를 적어놓은 책을 헌책방에서 자주 집었다.
물론 나라도 그런 사람이 앞에 있다면 꿈만 같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을 어딘가에 말해주고 싶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란 존재가 하찮지는 않지만, 특별한 만남을 기억하는 일 또한 삶의 한 방식 아닌가.
근데 자꾸 본말이 전도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유명한 사람을 헷갈리면서 마구잡이로 사인을 받을 일인가. 생각해 보면 아닌 듯하다. 그렇기에 사인을 받지 못해서 분한 마음을 삭이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입 안에 깃든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나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받은 몽당연필이 든 통을 한참 들여다봤다. 위로나 아름다움에만 글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나는 내 창피함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며 두고두고 곱씹을 생각이다.
※ 1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에세이 부문의 글을 잠시 쉴 예정입니다. 2월 말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