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ver with blue*

by GIMIN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을 시부야[渋谷]에서 보내는 게 고역이라는 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싶은 음반이 나를 불렀다. 나는 밤에 혼자 거기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시부야[渋谷] 역에서 내려서 하치코 출구[ハチ公口]로 가는 길도 만만찮았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사람이 밀려들었는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내내 저 아래에 있는 통로는 사람 머리 밖에 안보였다. 모자를 쓴 사람들은 모자를 벗었고, 이따금 움찔거리며 개찰구가 있는 오른쪽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계단 하나를 차이에 두고 나는 급류에 다이빙하는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줄을 서는 가운데 미는 등을 신경 쓰는 동안, 나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을 주고 저 멀리서 경찰로 보이는 사람이 줄을 나눈 바리케이드 같은 곳에 기대서 사람들에게 확성기를 사용하며 소리 질렀다. 질서를 유지하고 조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문득 가만히 있으면 늪에 덜 빠진다는 옛날 모험 영화 대사가 생각났다. 나는 여전히 다리에 힘을 준 채로 개찰구를 통과했다. 무릎을 주무를 새도 없이 스크램블 교차로가 있는 데까지 빨리 걸었다.




볼 일은 다 봤다만, 성과는 미미했다. 사고 싶었던 물건은 매대에 없었다. 머리 안은 매장 안에 울려 퍼진 노래가 계속 들렸다.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의「크리스마스 이브(クリスマス・イブ)」였다. 설렘과 체념을 오가는 음악이 나를 보챘던 걸까. 얼른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역을 통해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 마을버스에 해당되는 하치코[ハチ公] 버스로 일단 요요기우에하라[代々木上原] 역까지만 가고 싶었지만, 어디 가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나는 이제 역까지 가서 신주쿠로 가는 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쪽으로 향했다. 인도 또한 좁아서 사람들이 마치 2차선 도로에 있는 차처럼 한쪽은 상행 방향 한쪽은 하행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촘촘히 세워진 목책 같았다.


시부야 역 근처에 와서 다시 검색했다. 케이오 버스 한 대에 내 눈이 멈췄다. “宿51”라는 글자가 화면에 떴다. 여기서 "宿51"라고 써진 버스를 타면, 약간 돌아가긴 해도 결국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 간다는 정보가 일본어로 적혀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0번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공사로 인해 차로 또한 어지럽고, 정류장도 이리저리 변경된 곳이 많았다. 케이오[京王] 이노가시라[井の頭] 선 시부야[渋谷] 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10번 버스정류장은 바로 그 앞에 있었다. 마침 버스가 한 대 서있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줄 선 사람과 더불어 버스에 올라타려고 움직였다. 안에 있던 버스 기사가 나와서 우릴 제지했다. 그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버스 안팎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가 다시 들어가 운전대를 잡자 나는 얼른 올라가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내리는 문 바로 근처에 자리를 잡고 나니 어쩐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싶었다. 시부야 역 앞 광장의 수많은 인파도 잠잠해진 것 같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언덕길을 오르는 내내 나는 지나치는 사람들을 봤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8시만 되면 문 닫는 가게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언덕길 가로수에서 시작된 푸른 불빛이 이내 저 멀리 얼핏 보이는 푸른빛 덩어리 쪽으로 달려가는 듯했다. 버스가 왼쪽으로 길을 틀었을 때, 나는 푸른빛 덩어리가 있던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알아봤다. 아마 그쪽이 요요기 공원 가는 길이겠다고 나는 짐작했다. 입김과 조명으로 얼룩진 창 너머로 사람들의 실루엣이 테두리를 흐린 채로 수런거리고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지만, 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찍지도 못했다.




버스는 한동안 어두운 곳만 지나는 듯이 보였다. NHK 방송국 문 앞에서 멈추기도 하고, 정류장에서 사람을 태울 때 어느 아주머니는 출발하는 버스의 관성에 못 이겨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다시피 주저앉았다. 내가 앉은자리는 어두운 요요기 공원 숲의 거무죽죽한 실루엣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이리저리 기웃기웃거렸다. 산구바시[参宮橋] 역의 은은한 노란 불빛이 아니었던들 삭막하고 어두운 풍경에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 테다.


사람들이 거의 내린 버스 안을 나는 겨우 둘러볼 수 있었다. 버스 손잡이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매달렸다. 붉은 리본에 금빛을 띤 플라스틱 종 두 개가 걸려있었다. 창문 위에도 장식용 철사 모루가 붙어있었다. 운전석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트리도 있었다. 인파와 피로와 두려움에 치이며 보이지 않던 주변이 그제야 보였다.


창 밖을 보니 내가 잘 아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도쿄도청 건물이었다. 나는 안도감에 팔짱을 풀고 한 손을 유리창에 댔다. 공원을 돌아가면서 내가 익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주쿠역에 있는 케이오 백화점의 상표를 봤을 때, 나는 어두운 바다에서 불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풀어지는 어깨를 가눌 수 없었다. 긴장감이 잠시 유예하던 피로를 온몸에 풀었다. 정류장에 내리면서 나는 비교적 습한 공기를 이마 위로 직접 맞으면서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의 시부야는 가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나는 묵은 피로와 저린 어깨 그리고 묵직한 짐으로 절절히 깨달았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던 기억은 지금에 이르러 손잡이에 매달린 종 끝에 반짝이던 빛처럼 화사한 빛을 내뿜고 있다.(2024.8.31)





*주 :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의「크리스마스 이브(クリスマス・イブ)」영어 버전 가사 중 'Twinkling silver with a touch of blue'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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