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이는 츠키시마[月島]

by GIMIN

결국 원하는 볼펜을 사지 못했다. 긴자[銀座] 로프트에 가서도 마땅히 마음에 드는 볼펜을 찾을 수 없었다. (번화가일수록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이 많았던지라,)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했던 수고도, 오후에 이르러 최선을 다해(?) 호텔 근처를 서성거렸던 노력도, 수많은 신주쿠[新宿] 역 중에서도 특히나 외따로 있는 도에이[都営] 신주쿠[新宿] 역에 가는 수고도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었다. 그나마 겨울이었지만, 바람도 불지 않았던 게 다행이랄까.


계단을 내려와서 다시 긴자잇쵸메[銀座一丁目] 역으로 되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긴 했지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동안에 만만치 않은 피로가 돌아왔다. 이제 네 시를 막 넘겼지만, 동지(冬至)여서 그랬는지, 노을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우리는 결국 지하철을 타고 그대로 츠키시마[月島] 역으로 갔다.


역을 나왔을 때, 노을은 이미 빌딩의 낮은 곳으로 자신의 귀 끝을 숨기고 있었다. 달이 떠 있는 하늘은 검푸른 이내가 일렁거렸다. 몬쟈야끼 [もんじゃ焼き]를 먹기 위해 선택한 집이었지만, 이른바 ‘츠키시마[月島] 몬쟈야끼 [もんじゃ焼き] 거리’와는 또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가게였다. 줄을 서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몬쟈야끼 [もんじゃ焼き]가 짜지 않다는 점 때문에 택한 가게였다. 그나마 운영 중인 공식 계정에 전날 아이돌이 다녀갔다는 글이 새로 업로드되었다. 여행 오기 3일 전에 올라온 글이었고, 그만큼 화제가 되었겠다 싶었다. 오픈런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영업 개시에 맞춰서 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가는 길에 일반 마트가 보여서 잠시 구경했다. 보통 관광지에서 파는 사탕이나, 과자는 비싸기 마련이었으니까. 계산대에 있던 아줌마가 허리 굽은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든 채로 이리저리 살피며 계산했다. 채소를 담은 상자 옆에서 나는 내가 아는 과자를 살폈다. 관광지에서 파는 물건의 가격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천천히 갔는데도 결국 20분 전에 도착한 우리는 가게 앞에 있는 두 개의 문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한쪽은 유리문이었고, 한쪽은 붉은색이 칠해진 문이었다. 우리는 줄을 어디에 서야 할지 몰라서 일단 한 사람 당 하나의 문 앞에서 줄을 섰다.


하늘은 구름과 더불어 이내가 뒤엉킨 채 있었고, 길 건너편에 미리 연 이자카야[居酒屋]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잔을 기울였다. 하늘에 있는 푸른빛은 건물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싶었다. 세상은 마치 검푸른색의 필터로 둘러싸인 듯싶었다. 이리저리 뒤엉킨 전봇대나 전선 위에도 짙푸른 새가 옹기종기 앉은 듯이 푸른빛이 드리워졌다. 나는 문득 그 이내에 얼굴을 적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내는 도시의 저 멀리에서 정수리 바로 위까지 짙고 푸른빛을 밤의 도시에 슬며시 부여했다. 그저 그렇게 물들어가고 싶었다.


때마침 가로등이 켜졌다. 하품을 하던 고양이는 놀란 나머지 집 뒤편으로 숨었다. 우리 뒤로 줄 선 사람이 늘어나고, 노란빛으로 그득한 가게 안에서 종업원은 분주하게 메뉴를 나르거나 물수건을 놓거나, 그릇을 놨다.


몇몇 하늘을 기억한다. 하네다[羽田] 공항의 어둠이 짙게 깔릴 때 본 하늘은 붉은빛이 이따금 번쩍거리는 하늘이었다. 청명한 기운으로 그득했던 가와고에[川越]의 하늘은 건드리면 깨질 것 같았다. 습기마저도 추락할 듯한 더위에도 오사카[大阪]의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산뜻했다. 그러나 츠키시마[月島]에서 내가 본 이내 어린 하늘은 내가 살면서 본 하늘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이내였다.


나는 내가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그 좁은 골목의 이곳저곳을 핸드폰 카메라로 옮겨 담기 바빴다. 저린 다리를 애써 참고 볼 정도로 아름다워서 기다린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종업원이 리스트를 들고 나와 이름을 적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계속 그랬으리라.


결국 몬쟈야키 [もんじゃ焼き]를 ‘즐기기’ 위한 시도 또한 실패로 끝났다. 배고픈 나머지 몬쟈야키 [もんじゃ焼き]가 눌어붙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금세 먹어치웠다. 맥주를 마시지 않거니와, 츠키시마[月島]까지 와서 야키소바[焼きそば]까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불평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들어간 우리는 줄 선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계산을 하고 일어났다. 누룽지처럼 눌어붙었으면 맛있게 즐겼으리라는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역으로 가는 길에 ‘츠키시마[月島] 몬쟈야끼 [もんじゃ焼き] 거리’를 구경했다. 조그만 파출소 주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게가 있었고, 불빛은 이제 희끄무레한 이내를 저 멀리로 몰아냈다.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우리가 미처 아쉬워할 틈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불빛 가득한 그저 그런 번화가였다. 신비가 사라졌지만, 일상이, 저녁의 어둠이 지금 이 땅 위에 내려와 착 가라앉았다.


역 입구 근처에서 빌딩 외벽에 붙은 조그만 신사(神社)를 봤다. 이나리 샤 [稲荷社]라 이름 붙은 곳이었는데, 아까 지나칠 때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목표하던 일은 다 실패했어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은 마음껏 누렸던 또 다른 이상한 날이었다.(202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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