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고속버스 좌석 뒤에 재떨이가 있던 시절, 버스 터미널은 보따리를 든 할머니들로 장사진을 이루곤 했다.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가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할머니는 합죽이가 된 입술을 오물거리며 버스를 보거나 버스로 가기 위해 힘든 몸을 일으켰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은 버스 기사가 그들을 맞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천천히 버스 계단에 오르셨다. 오르시는 모습 주위로 세상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강릉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밤, 검푸른 그날 사이로 어룽거리는 달빛을 오래 바라본 일이 있었다. 휴게소는 불빛이 가득했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도로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그날 이후로 몇 명의 사촌을 잃었고, 다시 만나지 못했다. 슬픔이 어린 풍경은 내 안에서 어떤 원형이 되어 빛바랜 사진 속에서도 훤한 이마처럼 살아 있곤 했다.
경주 터미널에서 내리던 여름, 나는 터미널을 나와 엄마는 근처에 있는 관광 사무실에서 버스 관광을 예약하곤 했다. 코스는 두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코스는 경주 시내를 도는 코스였고, 나머지 코스는 경주 외곽을 도는 코스였다. 나는 감은사지 석탑과 문무왕릉이 보이는 바다를 거닐었고, 석굴암까지 가는 길목을 겪기도 했다. 사진도 남은 기억도 별로 없지만, 버스 터미널 대합실의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나는 좋아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 손자국과 콧방울 자국을 내면서 과자를 바라보는 일은 확실히 즐거웠으니까.
멋모르고 할머니 손을 따라 조계사에서 출발하는 성지순례 버스에 오른 적이 있었다. 강원도로 가는 버스였는데, 나는 그냥 희한한 경험을 한 듯하다. 목련구모권선희문[目連救母勸善戱文 : 부처의 수제자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는 이야기]에 대한 차분한 낭송극을 버스 안 스피커로 듣는 와중에도 내 눈 길은 창 밖에 눈 덮인 시골 마을을 쳐다봤다. 눈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언덕길에도, 논과 밭에도 평등하게 내린 것 같았다. 세상은 허연 빛 속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흙빛이나, 노을빛으로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고속터미널에서 연무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어서 붐비는 터미널 안을 나는 오래도록 말없이 바라보았다. 때마침 태풍이 상륙하던 시점이라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엄마는 그런 내 손을 잡은 채로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버스를 타는 내내 창에 붙은 빗방울 하나를 계속 찾았다. 빗방울은 위에서 아래로 사선 방향을 한 채로 흘러내렸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버스를 누가 탈취하여 다른 곳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시간은 순조롭게 흘렀다.
MT를 양수리로 갔던 날, 전날 먹은 술을 해장국으로 달래던 나는 배추밭 사이를 거닐었다. 배춧잎 사이로 날던 나비가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나는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비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날개 색과 비슷한 하늘에 몸을 숨겼을 따름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근처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내 몸 안에 있던 취기가 마치 풀어진 채로 저 멀리 굴러가는 털실처럼 풀려나가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햇빛을 따사롭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으며, 물결은 잔잔했다. 세상의 모든 수고로움은 이곳에서 잠시 걸터앉아서 쉬는 듯했다.
좌석 버스를 타면서, 안전벨트를 맬 때마다 나는 답답함 속에서도 서서히 드러나는 이 기억들을 떠올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