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위해머리가 하얗게 센 한 어르신이 민원실을 방문하셨을 때의 일이다.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제도란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연평균 고령운전자로 인한 사망자수가 800명 이상으로 증가하자 만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자진취소)하면 지자체에서 소정의 교통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인데 실제로 경찰서에서는 면허취소만 가능하고 담당자가 고령 자진반납자를 추려 매월초에 지자체에 통보하면 다시 대상자의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에서 교통카드나 지역상품권 수령을 위해 개별 연락을 하는 시스템이라, 평소 문의전화가 오면 면허반납과 상품권 신청이 원스톱으로 가능한 인근 주민센터로 안내해드리곤 한다.
그런데 느린 걸음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경찰서 민원실까지 찾아온 연로하신 분께 차마 주민센터로 다시 가시라고 할 수가 없어서 오신 김에 면허 취소는 진행해 드릴 텐데 상품권은 주민센터에서 따로 연락이 갈 것이라는 안내와 대략적인 절차를 설명해드렸다.
상품권 수령 안내를 위한 연락처를 기입하고, 삐뚤빼뚤 떨리는 손으로 취소 통지서에 싸인까지 마친 그분은 내게 빛바랜 면허증을 건네며 나지막이 혼잣말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운전을.. 40년을 넘게 했어요''
순간 고개를 들어 바라본 투명 가림막 너머 그분의 눈빛은 방금 전까지 땀 흘리며 지쳐 보이던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밝고 명료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스크에 가려진ㅡ어쩌면 사무적이었는지도 모를ㅡ내 미소에 힘을 얻은 듯, 여태껏 교통 법규 위반 한번 없이, 무사고로 오랫동안 운전한 것을 자랑스레 다시 한번 힘주어 말씀하시기에 그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다고, 앞으로는 남들이 운전해 주는 차 타고 편하게 다니시라고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어설픈 격려를 보내드렸다.
어쩌면 40여 년간 그분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들의 발이 되어주었을 운전면허.
그리고 클릭 몇 번과 두 장의 서류 출력으로 종지부를 찍은 운전면허의 생명력.
진한 미련이 남은 듯, 자동출입문이 닫히는데도 한 분 한 분 민원실의 모든 직원분들께 목례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간 그분의 뒷모습에 나도 괜한 여운이 남았더랬다.
80세가 넘은 그 노인에게 면허 취소는 사실상 운전능력에 대한 사망선고와도 같을 것이다. 자진반납이니 자발적 운전면허 안락사라고 해야 할까. 고령자의 운전면허 취득과정은 단순 필기시험, 주행시험뿐 아니라 인지능력을 수반한 치매검사, 종별 시력기준을 충족해야 하고 교통안전교육 이수 및 최근 6개월 내 촬영한 증명사진까지 제출해야 접수가 되는데 심지어 이 일련의 과정을 3년 주기로 적성검사 및 갱신이라는 명목으로 반복해야 하기에.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살아왔을 그 어르신께 진심으로 다시 한번 존경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고령자 면허취소(자진반납) 업무는좀 더 엄숙한 마음으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