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길고도 짧은 하루였다.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을 쳐내느라 길었고, 내 몸은 하난데 주어진 시간 내에 쫓기듯 하느라 부족한 시간이 짧았다. 방문민원 응대하면서 전화받고, 그 와중에 서류 작업도 해야 했다.
보통은 세 가지를 번갈아 가며 하는 것이 일과인데 하루 종일 멀티로 나의 미숙한 소프트웨어를 돌렸더니 과부하가 올 지경이어서 퇴근할 때쯤 내 상태는 거의 눈 깜빡이고 숨 쉬고 걷는 기본적인 기능만 가능한 안전모드가 되었다.
어제부터 즉결심판 대상인 25명 자료를 일일이 주민번호 넣고 자료 출력해서 서류 만드는 것 하느라 바빴는데, 수시 적성검사 미필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 대상자 21명 서류 대상자 분류해서 만들고, 밀려오는 면허행정처분 서류(정지ㆍ취소 대상자) 검토해서 지방청에 상신하고, 여청과에서 요청한 미성년자 무면허 결격 넣고, 등기 수령 희망지 변경 요청받고, 면허행정처분 취소 철회 민원도 처리하고, 본청에서 파악하는 고령자 면허 자진반납 예산편성 관련 자료 시청에 문의하고. 사람들 말소리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계속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야속할 정도였다. 오늘 민원실 휴가자도 없었는데. 올해 중 가장 바빴던 것 같다. 고소 민원도 많고 과태료 민원도 많고 범죄경력조회 업무도 많아서 서로 도와줄 여력도 없었는데 이 와중에도 베테랑 선배님과 행정관님이 프로답게 본인 업무를 빠른 속도로 쳐내고 내 면허 민원을 간간히 응대해 주셨다. 당시엔 바빠서 표현할 겨를도 없었지만 터덜터덜 집에 와서 방전된 몸을 좀 충전하고 나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숙련도가 아니기에 부럽기도 하고 마냥 존경스러웠다.
나름대로 서류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없는데 업무상 등기를 보낼 일이 많은 탓에 각 대상자들에게 보낼 30여 통의 봉투를 들고 오후 5시쯤 우체국에 갔더니 대놓고 이렇게 한 번에 많이 보내실 거면 좀 일찍 오시라는 말을 들었다. 가뜩이나 바쁘고 힘들어서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랬는지 본의 아니게 행운의 편지 같은 거나 뿌려대는 등기 빌런이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순간 저기요, 이 서류 만드는데 반나절도 넘게 걸려요. 그냥 전체 선택해서 일괄 인쇄한 거 아니거든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죄송해요, 하고 말아 버렸다. 굳이 내 수고를 우체국 직원이 알아야 될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까. 일일이 주소 입력해서 등기 발송 입력해야 할 텐데 퇴근시간 다 돼서 일거리 한 무더기 들고 온 내가 잘못이지 뭐.
반대로 나에게 일거리(면허행정처분 대상자 조사서류)를 주시는 교통사고 조사계 분들의 서류를 받을 때 내 태도는 어땠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수사관님이 한 장 한 장 피의자든 피해자든 불러서 조사받고, 때로는 현장 가서 cctv도 수십수백 번 돌려보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경우 찾아가서 음주 측정하고 채혈하겠다고 하면 위드마크 공식 적용까지 시켜야 하는 등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발로 뛰어 열과 성을 다해 완성하셨을 수사서류. 그저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종이뭉치였던 그것들이 순간 한정판 신간도서처럼 귀하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중요 부분(의뢰서, 진술서, 사전통지서, 정황 보고서, 실황조사서, 수사결과보고서)만 기계적으로 체크해서 넘겼는데 관심을 갖고 범죄인지서부터 수사보고서와 피의자 신문조서까지 읽으니 전체 내용이나 오기 등 수정할 부분도 훨씬 눈에 잘 들어왔다. 딱딱한 수사서류에 인간냄새를 더하니 대상자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사건 하나하나가 드라마로 다가왔다.
어디가서든 밥값은 하고 살자는 것이 목표인데.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지금은 국보급 아이돌이 된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의 수고는 너 자신만 알면 된다".
그래 나 자신,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