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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20. 2021

경찰에게 채워진 보이지 않는 족쇄

'과잉진압'논란이 만든 소극 경찰

우리 회사처럼 매일 뉴스에 나오고 관련된 사건사고가 회자되는 회사가 또 있을까. 매일 출퇴근하며 경찰서를 들락거리(?)면서도 TV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서 더 자주 보는 파란색 바탕의 참수리 앰블럼.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적으로 젠더갈등과 혐오가 만연하기 시작하면서 불거진 여경 무용론이 다시금 이슈화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팩트만 추려서 말하자면, 층간소음 문제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흉기를 들고 돌발행동을 하는 피의자를 보고 피해자를 둔 채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혼자 자리를 이탈했다는 것이다. 지원하러 온 경찰도 피해자들이 피의자를 제압한 이후에나 도착하여 부실 대응 논란이 일었다. 해당 경찰청은 사과글을 올렸지만 피해자 가족은 울분에 차 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나도 경찰 이기전에 한 시민으로서 참으로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경찰이 문제 해결의 최후의 보루였을텐데 내가 부른 경찰이 다른 경찰을 부르러 나를 등지고 가버리다니. 순경이 38 권총을 갖고 있진 않았을 테고 테이저나 최소한 가스총은 소지하고 있었을 텐데. 일단 칼을 들었다면 사용요건은 충분히 충족했을 거고 한 명의 피의자라 타깃도 하나인데. 대신 칼받이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추가 피해방지를  위해 뭐라도 해봤다면 이렇게 동료 경찰까지 욕 먹이진 않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3층에서 난 비명소리에 1층에 있던 남편이 달려갔을 정도면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피해자가 내 가족이었다면 대처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까. 성별을 떠나 경찰로서 직무수행에 대한 문책은 마땅히 받아야 할 사안이다. 반대로 나였다면 오히려 겁에 질려 이성을 잃고 과잉진압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내가 초임지에서 신임순경으로 지구대 실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내 멘토였던 경위님과 근무표에 지정된 순찰차를 타고 야간순찰 중 관내 병원에서 행패 소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다. 세세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70세의 남짓한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가 90세 정도 되는 노모의 퇴원 문제로 병원에서 욕설을 하고 소란을 피워 112에 신고된 것으로 귀가조치를 시키기 위해 일단 소란자를 순찰차 뒷좌석에 태우고 야심한 시각 인적이 드문 이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데시벨로 욕설과 고성을 내지르며 앞좌석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순찰차 격벽(순찰차는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 투명한 안전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을 부술 듯이 내려치는 상황에서 겁도 났지만 나까지 운전 중인 선배님께 의지하고자 하면 너무 부담이 되실까 그저 참고, 또 참다 대체 왜 저런 행동을 그저 견디고 받아줘야 하는지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와중에 선배님이 갓길에 정차를 했고, 미쳐 날뛰는 고릴라의 공격을 받는 듯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는 순간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뒷좌석 문을 거칠게 열고 반말로 "내려!"라고 소리친 뒤 테이저건을 뽑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하반신을 향해 겨눴고,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상황에 놀란 선배님이 내 테이저건 총구를 한 손으로 막아 땅 쪽으로 내리고 몸을 돌려 노인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인도 나의 돌발행동에 당황했는지 좀 수그러들어 상황이 진정되었고 나도 이성이 돌아와 부끄러움에 선배님께 사과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일 말고도 이성을 잃은 사람들을 대면할 때면 테이저건을 쏘고 싶어서 현장에서 선배님들 눈치 보며 여차하면 쏠 태세로 대상자의 등 뒤에서 총자루를 만지작거리던 일이 꽤 있었는데 겁 많은 강아지가 더 크고 사납게 짖는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었다.


한편, 2014년 봄. 당시 20세였던 한 청년이 술을 마시고 새벽 3시경 귀가했는데, 낯선 아저씨가 집을 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앞에서 도둑을 마주한 청년은 빨래건조대와 자신의 손과 발을 이용해 완전히 제압을 했고, 뇌사상태에 빠진 도둑은 그해 겨울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무기도 없이 도망치려 했던 도둑을 때려죽인 청년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항변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개월, 결국 실형 선고로 끝이 났다. 우리나라 형법 제21조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한 이유'란 대관절 무엇이기에. 여담으로 현장에는 도둑이 흘린 피가 낭자했고 뇌사에 빠졌던 당시 60세가 다 된 도둑의 치료비를 부담하다가 그의 친형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동정이 가지 않는다. 도둑이 감춘 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온 도둑이 보복성으로 다시 우리 집을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당시 청년의 집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동거하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현장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피해자에게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인정되는 정당방위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생사가 달린 피해를 당하는 순간에 방어 행동이 가해자에게 과하지는 않는가 생각해야 한다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비슷한 이유로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관들은 '과잉진압'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된 사건은 논외로 하고 일반적인 신고 사건 현장의 경우, '민주경찰'을 표방하며 '피의자의 인권'이 중요해진 이 시대에 현장에서 경찰관들을 위축시키는 것은 경찰 개인의 공포심, 업무미숙, 무책임함 보다도 인권위와 사법부, 언론 등이 경찰에게 채운 보이지 않는 무거운 족쇄 때문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가 없도록 가장 먼저 이것을 풀어주는 일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당시 시보 경찰이었던 내가 행패 소란자를 테이저건으로 제지하려고 했던 그날 밤, 나를 제지했던 선배님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행패 소란을 부리던 노인이 아닌 앞길 창창한 후배 경찰의 장래였을지도 모르겠다.(민간인에게 경찰장비를 사용하게 되면 사후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적절했는가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때 상대방이 인권위에 제소라도 하면 온전히 그 책임은 경찰관 개인의 몫) 아직도 참 적응이 안 되고 '음주+운전'처럼 결합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이질적이고 거부감을 주는 두 단어가 바로 '피의자+인권'이다. 경찰은 어쩌면 사명감보다도 인류애가 필요한 직업일지도.


최근의 통계를 보면 경찰의 총구가 많이 겨눠진 곳은 슬프게도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 같다. 경찰관은 트라우마 위험 등으로 자살률이 높은 특수직 공무원 중에서도 자살자 수가 많은 편이다. 2021년 올해만 해도 11월 현재 21명(11일 기준)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범죄자가 아닌 경찰관을 향한 경찰의 총구.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군인이 적군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듯이 경찰도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경찰 스스로와 선량한 시민을 지키기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가 조성되어 좀 더 신뢰받는 경찰, 남녀노소 모두 안전한 사회가 되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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