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행은 얼마만큼 진실했는가
<양파 한 뿌리> 이야기의 짧은 교훈
옛날 옛적에 몹시 심술궂고 인색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선행을 한 적이 없었지요. 어느 날 이 여인이 죽자 악마들이 이 할머니를 지옥의 불바다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할머니의 수호천사는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도 불쌍해서 하느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하느님은 이 여인이 살아생전 착한 일을 단 한 가지라도 했다면 고려를 해보겠다고 했지요. 수호천사는 할머니의 인생을 샅샅이 뒤져 마침내 단 하나의 선행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텃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 거지 여인에게 준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느님은 그 양파 한 뿌리를 할머니에게 내밀며 그것을 붙잡고 빠져나오면 천국으로 보내주고, 끊어지면 그대로 남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수호천사가 할머니를 꺼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양파줄기를 잡아당기자 불바다 속 다른 죄인들이 자신들도 살겠다며 할머니에게 들러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매몰차게 걷어차며 소리쳤습니다. "이건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고! 나를 구해주는 것이지, 너희들을 구해주는 게 아니야!" 그녀가 발버둥을 치자 양파 뿌리가 끊어져버렸고 할머니와 매달린 사람들은 모두 다시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수호천사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양파 한 뿌리' 이야기
어떤 이는 이 이야기에서 구원의 희망을 보고 어떤 이는 수호천사의 연민에 안타까워하며 공감할 것이며 또 다른 이는 권선징악적 결말에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의 대문호라는 수식어가 명실상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통찰력에 감탄했고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어쩐지 회개의 마음이 들었다. '물질'을 상징하는 '양파 한 뿌리' 따위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하느님이 그녀에게 끝까지 붙잡으라고 한 마지막 기회는 거지 여인에게 주었던 '양파 한 뿌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선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문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집착한 그녀는 우연하고 사소한 선행으로 어렵게 얻은 천국에 갈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같은 이유로 그녀가 거지 여인에게 준 것이 양파 한 상자, 양파 한 트럭이었다 해도 이야기의 결말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 또한 물리적ㆍ체력적 한계를 핑계로 마음을 물질로 대신한 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인간관계에 공간적 제약이 생기고 비대면이 미덕인 사회로 변하긴 했지만 측근의 경조사를 봉투로 대신하거나 명절 같은 때 음식 장만을 직접 돕지 않고 용돈으로 대신할 때, 소액이지만 정기 후원하고 있는 아이의 소식을 찾아보기를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룰 때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진 미안함과 약간의 죄책감이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 기인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뿌려댄 양파 뿌리들은 과연 얼마만큼 진실했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반대로 물질적 빈곤은 사람을 옹색하게도,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바닥에 팽개쳐질 정도로 사람을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남녀노소 받고 싶은 선물 통계 부동의 1위가 '현금'일 정도로 '돈'을 최고로 치는 요즘 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알량한 '양파 한 뿌리'가 아닌 진정성 있는 선행(善行)이 선행(先行)되는 세상이 되길 소원해본다. 훗날 우리의 수호천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 곁을 떠나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