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흔히 '귀 빠진 날'이라고 한다. 그 의미가 궁금해 찾아보니 출산을 할 때 엄마 뱃속에서 자란 아기가 머리부터 바깥으로 나오는데 아기의 귀가 모체 밖으로 나오면 그때부터 나머지 분만 과정이 수월해진다고 하여 '귀가 나오다=아이가 태어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의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 그를 열 달 가량 품고, 엄청난 진통을 겪은 것이라는 의미를 상기시켜 주는 표현이었다. 미물일지라도 어느 하나 쉽게 태어난 생명은 없을 것이다. 이 위대한 탄생의 날. 진정으로 축하받을 사람은 생일을 선물 받은 사람인가 생일을 선물 한 사람인가.
어릴 적 '생일'에 대한 이미지가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면, 두 번의 출산을 겪은 지금은 생일이란 '세상을 선물해주신 고마운 당신'이라는 느낌이다.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여리디 여린 생명을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하는 일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과 함께 차별과 조롱 속에 살아온 주인공의 엄마가 임종을 앞두고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인데, 열어보기 전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고 먹어보면 달콤하기도 쌉싸름하기도 한 것이 인생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약간의 설렘을 주기 위해 초콜릿 상자라는 표현을 쓴 건지도). 문득 초콜릿을 싫어하는 이에게는 주어진 인생이라는 선물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것이고 체질상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는 위험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두가 국적도, 인종도, 환경도 모두 랜덤 하게 주어진 거대한 럭키박스인 '생'이라는 선물을 받고서 내 선택에 따라 살면서 만들어 낸 결과들이 다시 선물처럼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이에게 원하는 대로 골라 담은 것도 아닌 이 불친절(?)하고 엄청난 DIY(do-it-yourself) 인생 박스. 이것이 값지고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받은 입장에서는 최대한 열심히 잘 만들어보고, 준 입장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잘 만들어보도록 도와주며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나의 서른 여섯 생일을 기념하며 나보다도 훨씬 어렸던 스무 살 초중반 나이에 아이를 낳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바삐 사느라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젊은 청춘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묵상해본다. 어느덧 슬하의 자식을 이만큼 키워내 올해도 무사히 생일을 맞게 해 준 나의 부모님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이제는 매년 축하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