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은 없는데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
기계는 갈수록 '스마트', 과연 인간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입증된 '한글'을 바탕으로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의 실질적 문맹률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75퍼센트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무려 10명 중 7명 이상이 글자를 읽고 쓸 줄은 알지만 사실상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도 아직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미취학 아동이 둘이나 있다 보니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다양하고 복합적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먼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나부터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잘 읽지 않으니까. 또한 한창 유아기에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대화하며 말을 배울 시기에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입모양과 말소리의 전달이 불명확해진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마트폰 접촉 연령이 낮아지면서 쉽고, 재밌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자라서 정적인 글자를 읽고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내가 매주마다 꼭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인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게임중독과 폭력성향을 보이는 아동을 모니터링하며 '팝콘 브레인'에 대한 언급을 하신 적이 있다. '팝콘 브레인' 이란,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첨단 디지털기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현실 적응에는 둔감한 반응을 보이도록 변형된 뇌구조를 일컫는 것으로 실제 인터넷 장시간 사용자의 뇌를 촬영한 MRI 영상 분석한 결과 인간의 뇌에서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돼었다고 한다. 이는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할 뿐 다른 사람의 감정 또는 느리고 무던하게 변화하는 현실에는 무감각하게 된다는 의미로, 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우리 아이만 보더라도 스마트폰 3분짜리 영상도 채 끝나기 전에 이내 다른 영상을 재생하곤 하는데 1초에 30프레임 내외의 동영상도 지루해서 못 보는 아이가 책은 오죽할까. 책을 읽자고 가져와서도 2장, 3장 건너뛰는 것은 기본. "옛날 옛적에~ 했답니다~" 하고 돌연 3초 만에 이야기를 끝내버리기도 하고. 밥 먹을 때도 좀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는 걸 보면 산만한 성향 탓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부모로서 가장 잘못한 것은 아이에게 '맥락'을 알려주지 못한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나름대로 민주적인 가법이 세워져 있어서 거실에서 TV 채널을 선점하는 것도 나이불문, 성별불문 거실 소파를 차지한 선착순인 암묵적인 룰이 있어 다 같이 거실에 모일 때면 차례를 기다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선택한 프로그램을 다 함께 시청하곤 한다. 이때에 아이는 본인 차례에 주로 TV로 유튜브를 시청하는데 내용은 그때그때 콘셉트를 잡아서 특정 색깔의 디저트를 먹거나 새로 출시된 장난감을 뜯어서 늘어놓거나 하는 주로 뚜렷한 기ㅡ승ㅡ전ㅡ결이 없는 콘텐츠들이다. 식감이 딱딱하면 딱딱하고, 맛이 시면 시고, 예쁘면 예쁘다는 즉각적인 제스처와 멘트를 하거나 가위바위보 벌칙으로 꿀밤을 때리고 하는, 그저 단발적인 시청각 자극을 주기 바쁜 영상들. 그나마 생활습관 송이나 ABC송 같은 콘텐츠들은 가사를 따라 하면서 머리에 남는 지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책 대신 전래동화나 이솝우화도 유튜브로 같이 보기도 해봤는데 기억에 남는 특정 장면(호랑이가 나타나 위협하는 장면,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욕심 많은 인물을 혼내주는 장면 등)에만 관심을 보일 뿐, 이야기의 흐름이나 전후 인과관계는 관심이 없다. 아, 이를 어찌할꼬.
그렇다고 유튜브 자체를 아예 못 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마이아사우라, 테리지노사우루스, 오비랍토르 등 나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공룡이름도 줄줄 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흥미 유발이나 학습효과도 분명 있는 것 같고, 두 아이의 육아난도를 하향 평준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점도 백번 인정한다. 다만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스마트폰 액정, TV 모니터보다 서로의 얼굴을 더 많이 바라보고 소통하는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중요한 일일 터.
얼마 전 <돈 룩 업>이라는 영화를 봤다. (정확히는 보다 말았다. 내 차례에 러닝타임 전부가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재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장르가 코미디였다. 그것도 섬뜩하게 어두운, 바짝 날이 선 블랙 코미디. 지구가 혜성과 충돌 위기에 놓여 전인류가 멸망할 상황인데도 이것을 한낱 기삿거리로 치부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시청률, 주가조작에 이용하는 사람들. 선동된 미디어에 마약처럼 취한 군중들이 진실을 폭로하려는 개인을 오히려 정신병자 취급하는 세상. 영화적 설정은 다소 극단적이었지만 현실 묘사가 극사실주의라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영화 속에서처럼 정말 지구 종말의 재난이 닥친다면? 음, 스피노자라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을 텐데. 요즘 사람들은 정말 영화 속처럼 이슈화하고 나름대로의 이익(주식, 지지율, 시청률, '좋아요'와 조회수 등)을 증대시키려고 혈안이 될 것 같다. 가짜 뉴스도 퍼질 테고. 어차피 멸망할 거 내일이 없이 사는 무법천지가 될 수도 있고. 나 같으면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 같은데. 과연 우리 아이들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게 될까.
어쨌든 나도 아이들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스마트기기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버렸고, 이것에 종속되고 휘둘릴 것이냐, 스스로 중심을 잡고 지혜롭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자신만의 저울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과 악이 혼재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판단의 기준의 될 건강하고 튼튼한 마음의 저울을. 자라면서 저울의 '0점'을 맞추는 일은 스스로 결정하더라도, 저울의 '무게추'가 될 최소한의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지녀야 될 가치는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사랑이 없는 성취는 헛된 것이라고. 남을 등쳐먹고, 속이고, 무언가를 망가뜨려 가면서 쟁취하는 것이 성공이라면 차라리 실패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길. 갈수록 타인은 경계하고 기기와 미디어에 의존하는, 오히려 사람은 어쩐지 점점 멍청해져가고 있는 이 '스마트 시대'에 아이들이 가슴속에 좋아하는 시 한 구절쯤은 품고 사는 그런 어른으로 자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인간성의 상실과 스마트기기의 중독의 위험성을 논하는 이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우리. 가끔은 휴대폰도 TV도 없이 고요히 둘러앉아 천천히 함께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