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는 이름의 양날검
지킬 것인가, 맞설 것인가
경찰관은 법질서를 수호하는 직업이다. 사전적으로는 '사회 공공의 질서유지와 그 장해 제거를 위하여 당사자에게 강제, 명령하는 행정 작용 또는 그 조직'을 일컫는다. 법률에 정해진 행위를 법 테두리 안에서 집행하는 사람. 경찰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행동 하나하나를 제약하는 법 규정들. 그런데 때로는 이 '법'이 경찰을 옭아매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올초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대원들 기사를 보다가 공노총 소방 노조 위원장이 집회에서 남긴 인상적인 말을 보게 되었다. "소방대원들의 희생이 계속되는 이유는 정부와 소방당국이 현장의 상황과 괴리되고 책임 회피를 위해 면피성 정책만을 내놓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라는 말. 소방현장에 대해 잘 모르지만 왠지 알 것 같은 이 낯익은 느낌. 그래도 소방은 최근에 국가직 전환도 되고 노조도 있으니 경찰보다는 여건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경찰은 대국민적 요구나 조직 구성원들의 합의 없이 자치경찰을 한다며 별안간 직제를 개편하고 노조는 언감생심에 서별 직장협의회 정도만 허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경찰도 단지 조직 전반의 처우개선을 위하여 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 뿐인데. 법상 연대가 불가능한 경찰 직장협의회(직협)가 '전국 직협'을 연대를 추진하자 '불법 사조직'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경찰청은 자치경찰 도입, 국가 수사본부 신설 등 경찰 조직 대변혁의 시기에 수사권 개혁으로 경찰의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고 직장협의회는 법령에 근거해 설립되는 단체라는 이유로,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며 '법령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다'라고 경고하며 직협 연대의 입을 틀어막았다. 경찰이 노조와 같은 단체를 만들면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이 불가능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미국, 프랑스 등 이미 외국 여러 나라의 경우는 이미 경찰 노조가 합법화되어있다. 미국의 경찰노조는 1960년대부터 조직 내에서 마약조직이나 조직폭력과 연계된 부패한 경찰들을 몰아내는데 주력하였고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에 노력해왔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경찰의 약 70%가 가입되어 있어 경찰들이 거리집회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등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독일, 호주, 스웨덴, 남아프리카 공화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경찰노조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들을 보장하고 있다.
경찰 노조가 법 개정으로 우리나라에도 인정이 된다면 내부적으로는 불합리한 승진, 인사, 보수 체계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여론을 등에 업고 경찰을 정치적 속죄양으로 삼는 부조리한 관행을 척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단체행동권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파업이나 태업 등 치안공백의 우려가 있는 행위만 제재한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낡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발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순기능이 훨씬 더 많을 터.
사실 법이라는 것도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완벽하지는 않다. 2015년 폐지된 간통죄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법도 있으니. '삼수변'에 '갈(거)' 자로 이루어진 법(法)이라는 한자가 의미하듯, 시대 흐름에 맞추어 물 흐르듯 법도 변해야 한다. 오랫동안 고인 물은 응당 썩기 마련이며 이 땅에서 경찰이 막강한 공권력으로 무고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바야흐로 시대적 정의에 맞서 싸우며 이룩한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에서 '공정', '정의', '상식' 등 시대의 흐름이 요구하는 중요한 가치들을 수용하며 변화해야 한다. 일반인의 인권의식 및 인권보호를 위한 관련 법령은 빠르게 정착되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온 데 반해, 권한보다 의무와 책임만이 강조되는 경찰 관련 법령들은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찰관의 인권은 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듯하다. 기존의 공권력에 힘을 너무 뺀 나머지 비틀거릴 지경이다. 힘없는 경찰이 과연 어떻게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중앙경찰학교에는 경찰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문구가 있다.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이제 젊은 경찰관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그대는 정녕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