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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Feb 17. 2022

마음이 무너지던 날

마음까지 가난해지지 않기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요?"

어젯밤 여느 때처럼 불 꺼진 침실에서 다섯 살 첫째에게 왼쪽 팔을 베개 삼아 내어 주고 오른쪽 팔엔 세 살배기 둘째가 뒹굴거리며 셋이 나란히 누워있다가 아이들에게 늦었으니 이제 자자고 말하는 순간, 큰아이가 불쑥 뜬금없는 말을 하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어린이집에도 가기 싫단다. 어린이집에 왜 가기 싫으냐고 물으니 엄마랑 마트도 가고 바닷가도 가고 싶다고 하는 아이. 엄마가 회사에 갔다 와야지 마트에 가서 우리 공주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예쁜 옷, 장난감도 사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고 말았다.

생후 100일이 채 되기 전부터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한 우리 큰딸.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며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출근길에 나서는 부모를 가지 말라고 붙잡은 적이 없었는데. 사교적이고 씩씩한 첫째가 어린이집 생활을 잘해주기도 했고 외동은 외롭다며 주변에서 둘째를 권하여 수백 번 고심 끝에 만난 둘째 아이까지. 나름대로 직장생활과 두 아이 양육을 병행하며 우리 식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고 있고 힘들어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하고서 사실은 이렇게나 못난 부모의 삶의 무게를 그 여리고 작은 몸으로 나누어 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셋, 서른넷. 결코 적지 않았던 우리 나이에 가진 것이라고는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뿐. 양가 도움 없이 17평 낡은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한 짧은 신혼생활을 거쳐 신용대출로 은행의 도움을 받아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를 사서 두 아이와 이사를 온 지금까지의 지난날을 회상해보았다. 때로는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적도 있었지만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을 만큼 소중한 나의 가족들. 순간의 선택들이 후회로 남지 않도록 열심히 발버둥을 치며 살았지만 마주한 현실의 벽 앞에서 나는 목놓아 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쉽고 무책임한 말로 아이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첫째와 달리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둘째도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얼마나 엄마하고 있고 싶을까. 맞벌이어도 한 명의 수입은 집과 차, 육아휴직기간에 받은 가계대출 등 각종 대출상환에 쓰이기 때문에 한 명이 일을 쉬면 가계수입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라 24시간 곁에 있어주겠노라며 마냥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

가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또래에 비해 너무나 어른스럽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내가 더 단단한 어른이 돼서 우리 아이들의 아이다움을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음날 아침. 어젯밤에 언제 울었냐는 듯 첫째가 일어나 자기 옷을 고른다. 내가 사준 천 원짜리 네일 스티커를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라며 엄마는 회사 잘 갔다 오라고 한다. 그래, 펑펑 울었으니 훌훌 털어 버리고 우리는 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자. 내가 사는 이유이자 목표이자 희망, 내 전부인 아이들을 위해서. 얘들아 엄마가 능력이 부족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내 목숨보다 귀중한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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