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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an 10. 2022

경찰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찰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뭘까

경찰은 특정직 공무원이다. 특정직 공무원(public official in special service)이란 국가의 안전과 방위, 사회의 질서유지, 또는 교육 등의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는 경력직 공무원으로 법관·검사·외무공무원·경찰공무원·소방공무원·교육공무원·군인·군무원 및 국가정보원의 직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열거된 직업군과는 다르게 경찰은 특히 국가안전보장, 사회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작게는 학교나 지자체 단위에서 처리할 일부터 크게는 국가단위의 시책까지 거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상황에 관여되고 업무가 주어지고 있다. 다른 특정직 공무원을 예로 들면 법관은 재판하는 것이 주 업무이고, 검사는 기소, 소방공무원은 화재진압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업무가 크게 강요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는데 반해 경찰은 주 업무인 범죄예방 및 수사업무 외에도 주취자, 정신질환자, 응급환자 이송, 층간소음을 비롯한 생활민원, 교통불편, 주정차 위반, 재해재난, 방역수칙 위반, 학교 경찰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전반에 대해 신고출동을 나가고 유관기관에 인계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경찰들끼리도 지구대ㆍ파출소를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 부를까.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는 정신이상자가 난동을 부리면 사람들은 경찰을 부른다. 경찰도 임의동행이나 귀가조치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데도.

민원실에 근무하면서 실제 민원인들을 응대하다 보면 경찰이 당연히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상대방에 대한 전화번호 하나, cctv에 찍힌 사진 한 장 가져오면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법에 범죄로 규정되지 않은 행위를 고소하겠다고 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조건 경찰을 탓하는 경우, 요청한 민원(국가유공자 지정, 동물 사체 처리 등)이 경찰 업무가 아니라 해당 부처 전화번호까지 찾아서 안내하는데도 대한민국 경찰 문제라며 세금으로 부려먹는 공노비 취급을 한다. 이들은 알까. 공무원들 중에 경찰이 보수, 수당, 복지, 승진, 연금 등에서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한편 준중형, 중형 사이즈 순찰차 트렁크에 싣고 다녀야 할 적재장비 목록으로는 락카, 음주단속 가방, 신호봉, 폴리스라인, 소형소화기, 방독면, 방탄조끼, 보호장비, 감식장비 가방, 삽, 사체포, 구명조끼&구명환(하계용), 제설용 모래주머니(동계용), 방검장갑, 비닐장갑, 경사로 바퀴 버팀목, 음주단속 안내 입간판(단속 업무 시) 등이 있다. 물론 계절에 따라 넣고 빼는 장비는 있지만 트렁크 용량은 한정적인데 요즘 같은 시국에 방호복도 실을 것이고 사회 이슈가 생길 때마다 넣으라는 장비는 자꾸만 늘고, 빼라는 지시는 생전 들어 본 적이 없다. 비좁은 공간에 여러 물건들이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뒤엉킨 순찰차 트렁크가 꼭 경찰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작 필요할 때 찾아 쓸 수나 있을는지. 내가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상대에게 마구 주문하는 벌칙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업무지시가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경찰청이 행정안전부의 독립외청으로 출범하면서 1991년 8월 1일 「경찰헌장」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경찰헌장의 내용은 ① 친절한 경찰, ② 의로운 경찰, ③ 공정한 경찰, ④ 근면한 경찰, ⑤ 깨끗한 경찰이다. 굳이 '친절한' 경찰을 1번으로 배치한 저의가 사뭇 궁금해진다. 또한 공직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청에서 지난 1998년 9월 30일 '행정서비스헌장 제정 지침'에 따라 제정된 경찰서비스헌장의 내용은 ① 엄정한 직무수행, ② 신속한 현장출동 봉사, ③ 민원의 친절·신속·공정한 처리, ④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한 직무수행, ⑤ 인권존중 및 권한 남용 금지, ⑥ 잘못된 업무처리의 즉시 확인 시정조치 등이 있다. 각 1번의 주요 내용을 합쳐보면 "모두에게 친절하면서 법을 어긴 행위는 엄정하게" 하라는 것. 친절하고 엄정하게.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묻고 싶다.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현장'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었다면 헌장에 절대 저런 표현은 넣지 못했을 텐데. 안타깝다. 피의자 인권을 목놓아 부르짖는 인권위도, 경찰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시민들도 아닌 우리 경찰 수뇌부에게 참으로 서운하다. 이건 우리 업무가 아니다, 이것은 할 수 있으나 저것은 어렵다, 이 말이 그리도 어려운가. 왜 우리만 다 떠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욕을 얻어먹어야 하는가.

매년 미담처럼 수능날 지각한 수험생을 경찰이 수험장에 태워준 기사가 뜨곤 하는데 어떤 학부모는 심지어 수능 전날 다음날 아침 8시 태우러 오라며 순찰차를 예약(?)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이 베푸는 호의도 자꾸 하면 권리인 양 받아들여지나 보다. 13만 거대한 우리 경찰 조직의 간부들께 묻고 싶다. 지금 우리 경찰 조직이 어때 보이시냐고. 경찰 간부들이 경찰들의 '깐부'들이 되어 주실 날을 고대해본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수밖에. 정녕 직원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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