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Jan 01. 2022

사명감(使命感)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언제나 허락되진 않는 것

근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을 옮겼다. 첫째 아이는 어차피 이번 학기 마치면 졸업이라 3월에 들어갈 유치원을 미리 정해놓은 상태였는데, 둘째는 어린이집에 사정이 생겨 갑작스럽게 옮기게 되었다. 원장님이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이 두 번째라고. 순간 작년 가을, 원장 선생님 눈가 주변에 멍이 든 것을 보고 어쩌다 다치셨어요, 넘어졌어요, 눈 주위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셨네요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던 일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 통화 가능하시냐고 물으시곤 뜸을 들이시더니 이내 젖은 목소리로 고심 끝에 스스로 체력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어린이집 운영에 관해 정리 수순을 밟기로 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셨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이 정신이 멍해졌다. 일단 실감이 잘 안 났고,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다. 둘째가 태어나고 이사를 오면서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겼던 곳인데. 일단 단지 내 어린이집이라 그야말로 위치도 코앞인 데다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책임감도 강하셔서 어지간하면 직장에 있는 부모가 보육에 관한 것은 신경 쓸 일이 없게끔 알아서 해주셨기에 더 그랬다. 우리 집은 맞벌이고 아이 둘이 다니는지라 가장 먼저 우리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린다며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어 죄송하다고 하셨다. 대신 인근 어린이집 아는 원장님을 소개해주시겠다고. 이렇게 맡은 아이들 부모님께 직접 한 분 한 분 연락하셨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괜히 짠했다. 아이들 하원하러 가서도 선생님 건강이 우선이니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라고, 큰 결심 하셨다고, 많이 아쉬우실 것 같다고 했더니 코로나도 그렇고 여름부터 힘든 일이 좀 있어서 모 선생님이 중간에 그만두신다고 해서 붙잡고, 어떻게든 이번 학기는 마치고 싶었다고 울먹이셔서 어깨를 토닥여드리며 아쉬운 마지막 학기, 마지막 하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한 해를 마무리하며 30년이 넘는 경찰생활을 마치고 퇴직하시는 분들의 마지막 인사말을 보는데 '역경의 세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조직과 동료에 대한 끊임없는 지지' 같은 단어들로 소회를 밝히시는 것을 보고 왠지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긴 시간 동안 직장생활 몸 건강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신 선배님들을 보며 부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배님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좋은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정도로 마지막 인사를 (댓글로) 보내드렸는데 이렇게 정든 직장을 떠나는 분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사명감'을 보았다.

'사명감(使命感)'이란 사전적 의미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내가 열과 성을 다해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일처리가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할 때도 있는 법. 대개는 건강 악화나 정년, 계약 만료 등의 이유로 아예 시도조차 해볼 수가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명감을 갖는다는 것이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거창한 결의 같은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고. 이전까지는 새해 소원으로 내 주변의 환경들(물질적 풍요, 사회적인 지위향상 등)이 바뀌기를 바랐다면 2022년 임인년 새해부터는 내게 주어진 과업들을 사명감을 갖고 숭고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내실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더불어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외려 불행이므로, 내 주변인들의 행복이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나는 새해가 되기를.

작가의 이전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