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 쓰러 왔습니다
고소=수사기관에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
고소인 : 고소장 제출하러 왔습니다.
경찰관 : (대략적인 사실관계 청취 후) 혹시 증거 있으세요?
고소인 : 그건 경찰이 수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경찰관 :...
내가 근무하는 곳이 민원실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고소장(진정서) 접수를 보거나 실제 상담을 하게 된다. 요즘에는 특히 보이스피싱, 중고거래 물품사기, 스토킹으로 인한 신변보호를 포함한 협박 고소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 놀란 것은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십중팔구의 민원인들이 준비 없이 무작정 경찰서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검색창에 한 번이라도 관심 있게 찾아보고 왔더라면 본인도 헛걸음하지 않고 그에 따른 인력낭비도 없을 것을. 처음이라 당연히 모를 수는 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당사자의 일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난 고소했으니까 경찰이 알아서 해주겠지? 안일하게 있다가 증거 불충분, 무혐의로 불기소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수사기관을 비난한다. 너네가 하는 게 뭐가 있어. 난 분명히 피해를 받았는데 왜 저 사람이 죄가 없다는 거야!(서장 나와!)
고소를 한다는 것. 특히 형사 고소(고발) 장이란 범죄피해를 입었으니 상대방을 형법에 따라 ''처벌'' 해달라는 의사표시이다.('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경찰서에 올 때는 '신분증' 지참해야 하고(당신을 처음 보는 우리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남의 이름 쓰는 사람도 있음) '상대방 인적사항'(양쪽 말 다 들어봐야 하므로. 최소한 불러서 조사할 수 있게 연락처나 이체해준 경우 예금주, 계좌번호라도), '언제ㆍ어디서ㆍ어떻게 알게 된 사람에게ㆍ어떤 피해를ㆍ얼마나ㆍ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육하원칙에 맞게 적고(빈칸 or 딸랑한 줄 '폭행을 당했습니다'는 대략 난감합니다) '증거'가 있다면 같이 첨부(폭행이라면 진단서, 협박이라면 주고받은 문자 캡처 출력본, 사기라면 이체증 등) 최. 소. 한 이렇게는 해야 고소장 접수가 가능하고 수사를 할 수가 있다.
아니 증거를 왜 나보고 내래? 경찰은 뭐하고?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한데
수임료 몇천만 원짜리 변호사를 사도 마찬가지. 변호사나 경찰이나 판사나 결국 제3자고 객관적으로 양쪽 말 들어봐야 하는 입장인데 오로지 증거가 진술뿐이면 그게 뇌피셜인지 팩트인지 알 길이 없지요.
(반대로 누군가 아무런 증거 없이 말만으로 당신을 고소했다고 생각해보시길)
소송이란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행위로 최종 결정은 판사가 하는 건데, 상대방을 법정에 세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경찰, 검찰에게 당사자인 당신이 마음 단단히 먹고 적극적으로 협조해도 관대하신 판사님들이 불방망이도 시원찮을 판에 솜방망이를 드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경찰 수사도 CCTV 자료 확보나 디지털 포렌식, DNA 감식 같은 수준에서 도움이 되는 거지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폭행, 협박, 사기 등등을 다 어떻게 밝혀낸답니까.
게다가 한 명의 수사관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건이 수십 건인데. 이제 접수했으니 당장 수사가 시작될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
그리고 고소장에 '죄명' 써오는 것 무지 중요한데 이거 한 줄 때문에 변호사 사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상황을 구성요건에 맞출 때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수사 안 해주면 당장 죽니 사니 울고 불고 난동 피울 시간에 제발. 감정적으로 할 거면 당사자끼리 사적으로 해결하시고 제대로 법적으로 할 거면 이성을 갖고 준비를 해오셔야지. 심한 경우는 전화로 누구누구 고소한다는 사람도 있고.(전화로 하는 것은 긴급'신고' 지 고소가 아님) 심지어 내 돈 떼먹은 놈이 전화를 안 받으니 경찰이 전화 한번 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 차라리 법 알못은 연민이라도 생기지 경찰을 세금도둑, 직무유기 철밥통 취급하며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가끔 정말 견디기 힘들다.
수사인력은 한계가 있는데 범죄피해로 인한 상담건은 매일매일 들어오고, 민원실에서 상담으로 증거 보강이나 민사소송 해당(대금지급이나 물품 반환청구 등)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있지만 곁에서 지켜볼 때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현재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는 나의 선배이자 동료이자 아끼는 동생이 최근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휴직까지 고민했었다는 말을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참 밝고 열심히 하는 친구인데. 사건은 많은데 수사관은 없고.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수사과가 힘들다 보니 애써 시험 봐서 딴 수사경과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민원인들 입장에서도 밀린 사건이 많으면 조사 대기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악순환이다. 하루빨리 인력 보강, 수사서류 축소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누구든지 어디든지 억울한 사람들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