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의 반란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감상평
바야흐로 지금은 미디어 홍수의 시대.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만한 것이 없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결국 뉴스를 보거나 아이들에게 리모컨을 양보하곤 했다. 매주 챙겨보던 tvn 대탈출도 시즌4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각 방송사의 간판 예능프로그램도 흥미를 잃어 갈 때쯤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릿 댄스크루를 가리기 위한 리얼리티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바로 그것이었다.
스우파 초반에는 댄서들의 화려한 비주얼(메이크업, 스타일링)과 기싸움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보이는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그녀들의 멋진 춤 실력, 서로의 개인사 및 관계성에 기반한 감동스토리까지 적절히 녹여낸 웰메이드 예능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에 공연시장도 많이 위축된 상황에 우리나라 댄스신에서 내로라하는 여성 춤꾼들이 커리어도 내려놓고(소위 말하는 계급장 떼고) 파이트 저지 및 대중들의 앞에 서서 공정한 심사대상으로 나선 것도 너무 멋졌고 프로그램의 화제성만큼이나 껑충 뛰어버린 그녀들의 몸값이 댄스신의 부흥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이전에는 가수들의 백업댄서로 다른 사람을 빛내주는 역할을 했다면 당당히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제 기량을 뽐내는 그녀들. 흡사 안개꽃의 반란이다. 그녀들이 정말 꽃이라면 향기가 TV 화면이라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댄서들이 역동적인 몸짓으로 안내하는 우물 밖 세상을 홀린 듯 바라본다. 와, 춤이라는 것이 단순한 유희와 오락의 경계를 넘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구나. 그리고 치열하구나.
항간에는 아이돌 파이트 저지가 전문 댄서의 춤을 평가한다는 것에 대한 뒷말도 있었지만 무대에서 춤을 실제로 춰본 사람이기에, 또한 그들도 대중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에 그의 조언이 부적절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수상경력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모여 자칫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었던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나처럼 춤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댄서. 춤추는 사람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겉멋만 들었거나 학창 시절에 학업을 등한시했을 것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는데 스우파를 통해 '예술인', '전문가'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무엇보다 그들의 춤을 대하는 태도, 진정성이 많이 느껴졌달까. 1분 30초 내지 2분 30초가량의 짧은 시간에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 고민하고, 여러 크루원들이 땀 흘려 함께 합을 맞추고, 대중적 인기와 팀의 정체성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등하는 부분 등이 참 인상 깊었다.
영화 기생충,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이미 세계를 무대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한국의 K-콘텐츠. 애국이 따로 있으랴.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글로벌한 콘셉트의 흥과 멋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장미보다 아찔한 안개꽃의 매력을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