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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Oct 26. 2021

법이 왜 이따위냐

약은 약사에게, 입법은 국회에서

2021. 10. 21. 자로 대망의 '스토킹 범죄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시행되었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됐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탓에 이전까지는 실제 신고가 들어오면 경범죄 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고작 10만 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처분을 하거나 구체적인 행위태양에 따라 공포심을 조장하는 언행을 했다면 협박, 주거에 찾아와 평온을 깨뜨렸다면 주거침입 등 미시적 관점에서 수사를 하고 처벌하는데 그쳤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장에서 스토킹에 해당될 경우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지속ㆍ반복적인 행위) 스토킹 범죄로 정의하고, 스토킹 범죄자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덕분에 피해자는 있었지만 범죄행위로 처단할 수 없던 상황들(이를 테면 피해자의 이동 동선을 따라 불쑥불쑥 찾아와 말없이 지켜보고 가거나 끈질기게 연락에 집착하는 것 등)을 좀 더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 제정 이전의 스토킹 행위처럼 범죄로 규정된 법이 없을 때는 고소장에 적을 죄명이 마땅치 않은 경우들이 간혹 있다. 안타깝지만 법으로 "~는... 에 처한다"는 명문의 근거가 없으면 기소도 안 될뿐더러 어설프게 죄명을 바꿔서 판사 앞까지 간다 하더라도 매우 높은 확률로 무죄일 것이기에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반려하기도 하는데 그 불똥은 오롯이 경찰한테 튀기 일쑤다. 심지어 내가 맡은 업무 중 면허 관련 민원은 더하다. 도로교통공단이 정해놓은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면허 갱신ㆍ적성검사 접수를 받아줄 수가 없는데 왜 예전 증명사진 다시 못쓰고 새로 찍어오라고 하냐며, 난 여태까지 한 번도 교통 위반한 적도 없고 교통안전교육 필요 없다 못 받는다 배 째라 하는 민원인들.

나는 이러저러해서 억울하고 불편한데 면전에서 법적으로 안 된다고만 하니 대한민국 경찰관들 정말 실망이라며 좌절과 노여움을 드러내는 당신께 드리는 (다소 극단적인) 질문 한 가지.


Q. 어느 날 당신이 거주하는 지자체에서 빨간색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새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기존에 쓰던 쓰레기봉투나 일반 비닐봉지는 수거해가지 않겠답니다. 당신은 규격이든 색깔이든 비용이든 새로운 봉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1번. 종량제 쓰레기봉투 관련 시행근거 등을 들어 지자체에 따진다

2번. 새 종량제 봉투 법을 시행하든지 말든지 내 마음에 드는 봉투에 담을 것이고 수거 안 해가는 환경미화원에게 지속적인 민원을 넣어 어떻게든 가져가게 만든다


2번을 선택한 당신? 오 저런. 악마도 울고 가겠군요. 환경미화원이 대관절 무슨 죄이기에. 정해진 봉투에 담은 것만 수거하는 것이 그들의 일인데. 경찰도 단지 법으로써 범죄로 규정된 것들을 법테두리 안에서 집행하는 사람인 것을.


설상가상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피해 유형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반해 미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차시비로 앙심을 품고 상대차에 적힌 운전자 연락처로 오만가지 사이트에 전화상담 신청을 넣고, 공중 화장실에 장기매매나 성매매 같은 낙서로 타인의 전화번호를 노출하여 피해자가 하루 종일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테러를 당해야 했던 사연 같은 경우(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 정보 관리권한이 있는 자가 타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했을 때 저촉되므로 일반인은 해당이 안 됨) 같은 것은 상담 중에도 계속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목전의 피해상황을 보고도 속시원히 해결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물론 법이라는 것도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완벽하지는 않다. 2015년 폐지된 간통죄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법도 있으니. 다만 너무 오랫동안 고여있어 썩어가는 물 같은 법이 아니라 드넓은 바다를 향해 세차게 흐르는 강줄기 같은 법이 되어 현대인의 평균수명에 비례하게 징역형 수감기간도 늘리고, 벌금도 물가에 맞춰서  높이고, 법정에서 알량하게 선처를 구걸하는 가식적인 뉘우침보다 피해자 앞에서 진정으로 사죄할 수 있게 하는 법. 유기체처럼 생동하는, 진정 이 사회의 정의가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길 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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