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그녀들
들어는 봤나, '유아 사춘기'
"엄마 미워!"
조그만 아이의 입에서 날아든 가시 돋친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던가. 세차게 부는 바람과 성난 파도처럼 아이가 한 번씩 고집을 피울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쑥대밭이 되고 만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등원 전쟁. 하룻밤 사이 한자릿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열감기로 지난주 내내 그 고생을 하고 열만 겨우 떨어트렸건만. 축농증이 남아 콧물을 흘리면서도 내복만 입고 가겠다고 하질 않나, 윗옷에 그려진 무늬, 바지의 촉감, 양말 길이까지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며 다 싫다는 미운 네 살. 어린이집 원장님은 우리 아이에게 유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라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바쁜 아침시간, 어서 등원시키고 빨리 준비해서 나도 출근해야 하는데. 현실은 참 녹록지가 않다. 시간도 인내심도 부족한 못난 어미는 끝내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아이를 보내고 회사로 향했던 날, 마지막까지 아이에게 사과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육아(育兒)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키우는 일(育我)이기도 하다.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나야 대낮의 환함을 깨닫게 되고 혹한의 추위를 견뎌봐야 따듯함과 더움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체득할 수 있듯이, 아이의 아이다운 행동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과정에서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는 더 누그러뜨리고 마음의 문은 더 열고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 안을 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의 키처럼 내 마음속의 어른도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비 온 뒤에 더 단단히 굳어질 땅처럼 너의, 아니 우리의 질풍노도의 시기도 함께 잘 헤쳐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