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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Oct 28. 2021

질풍노도의 그녀들

들어는 봤나, '유아 사춘기'

"엄마 미워!"


조그만 아이의 입에서 날아든 가시 돋친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했던가. 세차게 부는 바람과 성난 파도처럼 아이가 한 번씩 고집을 피울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쑥대밭이 되고 만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등원 전쟁. 하룻밤 사이 한자릿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열감기로 지난주 내내 그 고생을 하고 열만 겨우 떨어트렸건만. 축농증이 남아 콧물을 흘리면서도 내복만 입고 가겠다고 하질 않나, 윗옷에 그려진 무늬, 바지의 촉감, 양말 길이까지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며 다 싫다는 미운 네 살. 어린이집 원장님은 우리 아이에게 유아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라고.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바쁜 아침시간, 어서 등원시키고 빨리 준비해서 나도 출근해야 하는데. 현실은 참 녹록지가 않다. 시간도 인내심도 부족한 못난 미는 끝내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서로 마음이 상한 채로 아이를 보내고 회사로 향했던 날, 마지막까지 아이에게 사과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육아(育兒)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키우는 일(育我)이기도 하다. 칠흑 같은 밤을 보내고 나야 대낮의 환함을 깨닫게 되고 혹한의 추위를 견뎌봐야 따듯함과 더움의 차이를 더 명확하게 체득할 수 있듯이, 아이의 아이다운 행동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과정에서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는 더 누그러뜨리고 마음의 문은 더 열고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 안을 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의 키처럼 내 마음속의 어른도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비 온 뒤에 더 단단히 굳어질 땅처럼 너의, 아니 우리의 질풍노도의 시기도 함께 잘 헤쳐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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